전시회

[탑골공원] 01

드무2 2022. 9. 14.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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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공원] 01

 

 

 

 

 

 

탑골공원 ㅡ 서울 최초의 도시공원

전시기간 : 2022. 07. 22. FRI ㅡ 2023. 03. 19. SUN

장소 : 궁평도시유적전시관

 

 

 

전시를 열며

우리 주변에서는 공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일상의 스트레스를 공원에서 여유롭게 달래며 스스로를 재충전합니다. 공원은 이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생활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복잡한 빌딩숲 속에 존재하는 도시공원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소중한 안식처입니다. 지금은 누구나 누리고 즐기고 있는 도시공원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시기는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중 최초는 서울 종로2가에 위치한 탑골공원입니다. 탑골공원은 한양의 급격한 근대화와 경성, 서울의 역동적인 변화 속에서도 변함없이 그곳에 자리해왔습니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개관 이후 매년 종로 일대의 문화유산을 주제로 기획전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탑골공원의 역사적 가치와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지금은 노인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공간이지만 그 이전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탑골공원이 간직한 이야기, 공원을 즐겼던 사람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울역사박물관장 김 용 석

 

 

 

 

 

 

 

 

 

원각사 계문 圓覺寺 契文

세조世祖(재위 1455 ~ 1468)가 원각사 건립을 기념하기 위해 직접 작성한 것으로 수륙재水陸齋 참여를 권장하는 내용이다. 수륙재란 물과 육지를 헤매는 영혼과 아귀餓鬼를 달래기 위해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의례이다.

계문의 보관함에는 일제강점기 조선미술관 관장을 역임한 우경友鏡 오봉빈吳鳳彬(1893 ~ ?)이 계문을 소장하고 있다가 3 · 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명이자 당시 저명한 서예가였던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1864 ~ 1953)에게 친필 서명을 부탁한 문구가 있다. 아래의 글은 불교학계의 권위자로 동국대학교 초대 총장 권상로權相老(1879 ~ 1965)가 계문의 내용을 분석하여 작성한 해설문이다.

 

1465년 | 개인소장

 

 

 

http://news.bbsi.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77076 

 

세조의 불심 담긴 '원각사 창건 계문' 전격 공개 - BBS NEWS

< 앵커 >오늘날 이른바 어르신 성지로 자리매김한 서울 도심 탑골공원은 조선 임금 세조가 창건한 왕실원찰 원각사가 자리했던 애초의 \'불교 성지\'였는데요.. 세조 대왕의 불심이 담긴 원각사

news.bbsi.co.kr

 

 

 

 

 

 

 

 

 

 

 

 

원각사에 서기가 빛을 발하고 감로甘露, 수타미須陀味와 꽃비가 내리고, 여래가 현상하며, 사리분신舍利分身한 평등도량(원각사)에 동참한다. 우리 함께 맺어진 사람들은 이미 청정한 신심이 생겼으니, 망혹의 마음을 일으키지 말라. 망혹이 생기는 곳은 모두 연진緣塵이다. 연진의 덩어리가 무겁고 탁해져 산을 이루면 끝내 한계에 막힐 것이요. 가볍고 맑은 날이 없을 것이다. 만약 연진의 덩어리를 없애고자 한다면 삼태기와 삽을 같이 쓰면 되니, 그것은 마치 큰 바다에 늘어선 모기들이 모두 함께 바닷물을 마셔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제풀에 포기하지 말고 홀로 부침하려 하지 말라.

보리菩提에 대한 맹세가 여기에 있다.

 

성화원년(1465년, 세조11) 4월 11일

 

* 감로甘露 : 부처의 가르침이나 깨달음

* 수타미須陀味 : 하늘에서 감로가 내릴 때 솔잎 위에 생기는 흰색 물질

* 연진緣塵 : 인간의 본성은 흐리게 하는 여섯 가지 경계

 

 

 

기둥을 헤아려보면 300여 개나 되고

금빛 찬란한 전각이 비할 데가 없었으며,

뜰 가운데 13층 석탑을 세우고···

지금은 절이 없어지고 그 터는 민가가 되었는데 탑과 비는 아직도 남아 있다.

 

유형원柳馨遠,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 권1 「경도京都」 한성부漢城府, 1656년

 

 

 

 

 

 

조선경성도 朝鮮京城圖

19세기 한양의 주요 시설과 도로 및 물길을 목판본으로 제작한 지도이다. 원각사가 있던 자리에 탑동塔洞이라는 지명과 원각사지10층석탑이 표시되어 있다.

 

19세기 중반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

조선후기 실학자였던 유형원柳馨遠(1622 ~ 1673)이 편찬한 전국 지리지이다. 「경도京都」에서는 조선초기 원각사의 번창한 모습과 자술 당시의 폐허화된 모습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원각사의 변화상을 알 수 있다.

 

1656년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중앙도서관                                                                                                     복제

 

 

 

Prologue

         프롤로그

 

조선시대 탑골

현재 종로 인사동과 낙원동 일대는 옛날 한양 경행방慶幸坊이었다. 불교를 숭상崇尙하였던 세조世祖(재위 1455 ~ 1468)는 이곳에 원각사圓覺寺를 창건하였고, 일명 백탑白塔이라고 일컫는 대리석 소재의 10층 석탑을 건립하였다. 이때부터 그 주변을 탑이 있는 동네라고 하여 탑골塔골 또는 탑동塔洞으로 불렀다. 원각사는 왕실 사찰로서 번창하였고, 탑골 일대는 외국 사신들도 즐겨 찾는 한양의 명소名所로 발전하였다. 세조 이후 원각사는 예전의 위상을 점차 잃었고, 결국 1504년(연산군 10)에 폐사廢寺되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이후 원각사 터와 탑골에는 백성들의 민가가 빽빽이 들어서면서 과거 흔적을 찾을 수 없었고, 10층 석탑만이 우뚝 솟은 채로 옛 영광을 상징하고 있었다.

 

 

 

 

 

 

 

 

 

 

 

 

탑동연첩塔洞宴帖

1803년

 

훈련도감訓鍊都監 대장 김조순金祖淳(1765 ~ 1832)과 관원들이 자줏골(지금의 창신동) 일대에서 잔치를 열고 즐기는 장면을 그림과 글로 남긴 것이다.

그림 중앙 상단에 노란색으로 표현된 10층석탑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성시도朝鮮城市圖

1849년

 

한양을 묘사한 지도로 원각사터에 10층석탑이 표시되어 있다.

 

 

 

 

 

 

한양의 근대화와 탑골공원

서구 사회로부터 시작된 근대화와 신식 문물의 도입은 조선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수도였던 한양에는  근대화로 인한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전통도시 한양이 근대도시로 탈바꿈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증에서 도시공원 조성은 한양이 근대도시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한 목적이 컸다. 일찍이 해외 유학으로 서구 문명을 경험한 조선 유학생들은 도시공원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각종 수목樹木과 휴게 시설을 갖춘 공원을 도시민에게 편안한 휴식과 정서적 안정을 제공하는 건전한 공간으로 인식하였다. 한양에서 처음으로 조성되었던 도시공원으로 독립공원, 왜성대공원, 탑골공원 등이 있었다. 그중에서 독립공원과 왜성대공원은 각각 위치, 조성 목적의 이유로 도시공원으로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였고, 최초의 도시공원은 탑골공원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성 초기에는 공원 내 시설이나 운영 측면에서 완전한 형태의 도시공원이라고 할 수는 없었으나, 한양이 근대도시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물이었다.

 

 

 

 

 

 

서유견문西遊見聞

조선후기 정치가 유길준兪吉濬(1856 ~ 1914)이 일본과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각종 서구 근대문명을 바탕으로 조선의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저술한 책이다. 내용 중에 근대도시에서 공원의 필요성과 영향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1895년                                                                                                                                                                              복제

 

 

 

정신이 피곤하고 기력이 나태해졌을 때에 공원에 들어가 한가한 걸음으로 꽃향기를 맡으며 청명한 공기를 호흡하고,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면 고달픈 모습이 사라질 것이다.

 

유길준, 『서유견문西遊見聞』 2부 6편, 1895년

 

 

 

 

 

 

대원각사비

원각사비는 본래 탑골공원 자리에 위치해 있던

조선시대 왕실사찰인 원각사의 창건 내력을 담고 있다.

원각사가 없어진 후에도 줄곧 동일한 자리를 지켜 왔다.

탑골공원이 도시공원으로 정비될 때 석재로 바닥을 정비하였으며,

1963년에 보물로 지정, 현재는 보호각을 설치하여 보전 중이다.

원각사지 10층석탑과 함께 탑골공원의 전신인

원각사의 옛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 최초의 도시공원 조성

탑골공원은 서울에서 최초로 조성되었던 도시공원으로 초기 명칭은 '파고다pagoda공원', '탑동공원'이었다. 파고다는 포르투갈어에서 유래한 신성한 탑이라는 뜻이고, 탑이 있는 동네라고 하여 이미 탑동, 탑골로 불리고 있었기 때문에 공원 명칭은 원각사지10층석탑의 영향을 받았다. 공원 조성을 위한 논의는 1897년경부터 있었으나 본격적인 조성은 1899년부터 추진하였다. 공원 조성에는 영국인 해관海關 총세무사總稅務司 맥레비 브라운John McLeavy Brown(1835 ~ 1926)이 깊게 관여했다. 브라운은 공원 조성을 위해 한성부漢城府에 탑골 일대 민가 철거를 요구하였다. 당시 민가 철거는 한성부 주도로 진행하였는데 많은 거주민의 반발을 불러왔다. 결국 1901년경에 공원 부지 확보를 마무리하면서 담장과 출입문을 설치하였고, 거북이 형태 경계를 획정劃定한 후 1902년에 정식 개원開園하였다.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영국 출신 작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1831 ~ 1904)이 조선을 4차례 방문한 후 저술한 기행문이다. 이사벨라는 한양에 도착한 후 탑골 일대를 방문하였고 10층석탑과 주변 도시 경관에 대해 묘사하였다.

 

1898년

 

 

 

 

 

 

조회照會

대한제국 시기 관청 사이에 업부 관련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발송한 공문이다. 본 조회는 탑골공원 조성을 위한 무분별한 민가 철거를 정지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1899년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복제

 

 

 

 

 

 

코리아

영국 출신 기자 앵거스 해밀턴Angus Hamilton(1874 ~ 1913)이 러일전쟁(1904) 발발 전 조선, 러시아, 일본을 여행하며 기록한 여행기이다. 탑골공원 조성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맥레비 브라운의 성품, 합리적인 업부처리 방식을 소개하면서 조선에서 세관으로 근무하면서 겪었던 사건들을 기록했다.

 

1904년

 

 

 

그(맥레비 브라운)는 모든 사람을 솔직하고 공명정대하게 대하지만 근무 시간 중에는 국가의 냉정하고 무감각한 기계가 된다.

 

앵거스 해밀턴Angus Hamilton, 『코리아Korea』, 1904년

 

 

 

백색 석탑은 빽빽이 들어선 주택으로 뒤에 완벽하게 가려져 있는데···

석탑 전체를 사진에 담으려면 근처의 담으로 기어 올라가야 할 것이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 1898년

 

 

 

 

 

 

중서中暑 탑골의 인가를 헐어 공원을 만든다는 말이 있는데,

인가를 훼철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해당 주민들이 옮길 곳이 없어서 걱정이 많다.

 

『제국신문』 1899년 3월 14일 3면

 

 

 

 

 

 

공원 조성 이전 원각사지 10층석탑

 

 

『조선 조용한 아침의 나라 : 한국 스케치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 : A SKETCH OF KOREA』, 퍼시벨 로웰Percival Lowell | 1886년

 

 

 

『코리아Korea』, 앵거스 해밀턴Angus Hamilton | 1904년

 

 

 

공원 조성 이전 대원각사비

 

 

 

『코리아Korea』, 앵거스 해밀턴Angus Hamilton | 1904년

 

 

 

 

 

공원 조성전 원각사지 10층석탑 주변 민가

 

 

 

『한국 스케치Korean Sketches』, 제임스 스카트 게일James Scarth Gale | 1898년

 

 

 

 

 

 

코리아 리뷰

1900년대 초 조선에 거주하고 있었던 서양인들이 함께 구독하였던 월간 잡지이다. 기사는 대부분 조선에 거주하고 있던 서양인들이 작성하였는데 조선 생활 전반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기사 내용 중 탑골공원이 정비되어 가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1901년

 

 

 

파고다 옆 시내 중심부의 공원에 대한 상당한 정도의 작업이 조용히 완료되었다. 주변은 정리되어 담장을 둘렀고, 북쪽과 남쪽 양측에는 근사한 대문을 짓고 있다. 우리는 임진왜란 때 일본인에 의해 끌어내려진 석탑 상층부 2개 층이 원래 자리에 조속히 복구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코리아 리뷰The Korea Review』 1901년

 

 

 

파고다공원 문책 설계도

1910년 이후 | 국가기록원

 

이때 세워진 정문은 1967년까지 제자리에 남아 있다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문기둥을 거쳐 현재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초등학교 교문으로 일부 남아 있다.

 

 

 

탑골공원 연표

1465    원각사 창건

1467    원각사 10층석탑 낙성

1471    대원각사비 건립

1504    원각사 폐사

1899    공원 조성을 위한 민가 철거

1902    탑골공원 개원開園

1903    공원 서쪽으로 군악대 이전 및 팔각정 건립

1904    바가지형(瓠子式) 음악당 건립

1910    경술국치

1910    총독부에서 운영담당

1911    일반인 공개

1913    매일 및 야간 개장

1914    카페 파고다(塔茶園) 입점

1916    바가지형 음악당 철거 및 용산음악당 이축

1919    3 · 1 독립선언서 낭독

1932    경성부에서 운영담당

1933    어린이 놀이터 조성 및 라디오탑 설치

1945    해방

1946    원각사지 10층석탑 상층부 복구

1956    이승만 대통령 동상 건립

1960    3 · 1 독립선언기념탑 기동

1965    손병희 선생 동상 건립

1967    탑골공원 중수重修

1984    아케이드 철거 및 공원정비

1992    공원명칭 '탑골공원'으로 지정

2002    탑골공원 성역화사업

 

 

 

공원 정비와 시설 도입

대한제국 정부는 탑골공원이 도시공원으로서 면모를 갖추기 위한 시설을 정비하였다. 1900년에 창설한 대한제국 군악대軍樂隊가 탑골공원 서쪽으로 옮겨 오는데, 군악대 연주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해 팔각정을 건립하였다. 팔각정은 음향시설이 미비하여 연주공간으로 적절하지 않았다. 이에 1904년 탑골공원 동북쪽 담장 근처에 바가지형(瓠子式) 목재 음악당을 신축하였다. 이후 1916년 새로운 음악당을 건립하면서 바가지형 음악당은 사라졌다. 음악 시설과 함께 기존 시설물도 정비하였다. 10층 석탑 주변에 돌난간을 설치하였고, 대원각사비 역시 석재를 활용하여 바닥을 평평하게 정비하였다. 방문객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도 설치하였는데, 일본식 정자(사아옥四阿屋)와 화초관리를 위한 유리온실, 공중변소와 석등을 설치하여 휴게시설로서 기능을 강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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