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기념관 등

[수석전시실 ㅡ 부천시립박물관] 01

드무2 2023. 6. 4.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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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전시실 ㅡ 부천시립박물관] 01

 

 

 

 

수석전시실

 

 

 

부천시립박물관

 

 

 

 

 

 

 

 

 

 

 

 

 

 

 

 

 

 

통합관

 

 

 

 

 

 

 

 

 

 

 

 

 

 

 

수석 (壽石)이란?

 

수석이란,

하나의 작은 돌에서 자연이 무위적 無爲的으로 이루어낸

아름다움을 찾아 즐기는 풍류이자 자연사랑이다.

이러한 수석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자기발견 自己發見의 미학

자연 속에 존재하던 돌에서 어떤 아름다움이 발견될 때

우리는 여러 경험과 인문학적 식견을 토대로 이를 관상하게 된다.

따라서 수석 감상은 결국 자기심미안이 동원된

자연미의 발견인 동시에 자기발견이다.

 

축경 縮景의 미학

삼라만상의 온갖 형상이 하나의 작은 돌에

형태나 무늬로 축소되어 있는 것이 수석이다.

작은 돌에 집약되어 있는 대자연의 흔적을 통해

수석의 미적가치를 발견함으로써

이를 '축경의 미'라 표현한다.

 

정관 靜觀에 의한 사유의 미학

수석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에 몰입되면

세상일에 초연해지고 마음은 평온해진다.

정관의 상태에서 문득 터득되는 자연과 인간의 본질적 이치.

그 아름다움의 발견이 바로 수석감상의 즐거움이다.

 

 

 

 

 

 

입석암형산수경석 立石岩形山水景石

남한강

 

 

 

 

 

 

 

 

 

수석의 3요소

 

형 形

어느 일정한 공간에서 자연의 조형미를 즐기는 것이 수석이다.

따라서 형 形은 수석의 요소 중 가장 중요한 요건이 된다.

수석에서는 자연의 신비로움을 발견할 수 있는

무언가가 연상되어야 하는데,

연상은 상징화된 형태에서 환기 喚起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질 質

아름다운 형태를 갖추었더라도

금방 부서지거나 변색되는 것은 수석으로서의 가치가 없다.

견고한 돌은 중후한 안정감이 있으며,

여기에 피부조직이 치밀하고 섬세하면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인 질 質을 갖춘 셈이다.

하지만 견고한 돌이라 할지라도

보석처럼 지나치게 단단하여 차갑고 경직된 느낌을 가지면 안 되며,

모스 경도계로 4도에서 6도까지의 것이 좋은 수석으로 평가받는다.

 

색 色

수석에서 가장 이상적인 색깔은 진흑색 眞黑色이다.

농도가 짙고 질 좋은 흑색 돌은 빛을 흡수하여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해준다.

청색, 녹색, 갈색의 것이라도 색에 생동감이 느껴지고

무게와 깊이가 있는 돌은 수석으로서 미적 관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도형산수경석 島形山水景石

남한강

 

 

 

 

 

 

 

 

 

수석문화의 배경

 

수석을 감상하고 즐기는 문화는

동양적 정신인 자연애적 自然愛的 행위에서 비롯되었다.

자연을 사랑하고 즐기며 그 안에 안기고픈

간절함 때문에 산과 바다로 나서게 되었지만,

향유만으로는 삶을 영위할 수 없었기에

생각 끝에 자연 경관을 뜰 안으로 끌어들이게 되었다.

이것이 석가산 石假山이다.

사람들은 웅대한 산악경치를

자그마하게 축소시켜 재현하면서

문득 하나의 작은 돌에 보다 더 작게

산수미가 축소되어 있는 형상을 발견하였고

이로써 수석문화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들은 산수경관이 축소되어 있는 작은 돌을 보며

광대한 자연경을 연상하고,

한 치 밖에 안 되는 것에서도 천리나 되는 산악을 느끼며

저절로 자연에 빠져들게 되었다.

 

 

 

 

 

 

선형추상석 線形抽象石

남한강

 

 

 

 

 

 

 

 

 

우리나라 수석문화의 시작

 

삼국유사 三國遺事에 의하면 신라의 고승 승전법사 (연대미상)가

금오산 金烏山 서쪽 기슭에 갈항사 葛項寺를 짓고 돌 80여 개를 모아

화엄경 華嚴經을 강론하였다고 전해진다.

일반적으로 이를 우리나라 최초의 수석 기록으로 보고 있으나,

의상대사 (625 ~ 702)와 원효대사 (617 ~ 686)의 전기를 그린

13세기 고화 古畵 화엄종조사회전 華嚴宗祖師繪傳에

높이가 약 1자 가량되는 돌이

책상 위 향로에 장식되어 있는 장면이 있어

의상대사와 원효대사를 우리나라 최초의 수석인으로 보기도 한다.

승전법사, 의상대사, 원효대사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백제 무왕 武王 20년 (612)에 일본에 건네준 영산석 靈山石이다.

기록대로라면 백제는 이미 612년 이전에

수석을 즐기고 있었음이 증명되기 때문이다.

한편 근래에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서경 書經」중

고조선의 영토였던 청주 靑州 (현 산둥반도) 지역에서

괴석을 공물로 대납하기도 했었다는 기록이 발견됨에 따라

고조선 시대에서 수석문화의 뿌리를 찾는 연구가 조명받고 있다.

 

 

 

 

 

 

입석암형산수경석 立石岩形山水景石

영흥도

 

 

 

 

 

 

 

 

 

 

 

 

 

 

 

 

 

 

 

 

 

허련 許鍊 (1808 ~ 1893)

「필괴석도 筆怪石圖」 조선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심사정 沈師正 (1707 ~ 1769)

「괴석초충도 怪石草蟲圖」 조선시대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난석초충도 蘭石草蟲圖」 조선시대 간송미술관 소장

「백합괴석도 百合怪石圖」 조선시대 간송미술관 소장

「화조괴석도 花鳥怪石圖」 조선시대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금낭초접도 錦囊招蝶圓」 조선시대 간송미술관 소장

 

정황 鄭榥 (1735 ~ 미상)

「이안와수석시축 易安窩壽席詩軸」 조선시대 개인소장

 

 

 

「필괴석도 筆怪石圖」 조선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괴석초충도 怪石草蟲圖」 조선시대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난석초충도 蘭石草蟲圖」 조선시대 간송미술관 소장

 

 

 

「백합괴석도 百合怪石圖」 조선시대 간송미술관 소장

 

 

 

「화조괴석도 花鳥怪石圖」 조선시대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금낭초접도 錦囊招蝶圓」 조선시대 간송미술관 소장

 

 

 

「이안와수석시축 易安窩壽席詩軸」 조선시대 개인소장

 

 

 

 

 

 

조선시대의 수석문화 :

괴석 怪石의 곧은 덕을 칭송하다

괴석 怪石은 굳고 곧은 덕을 가지고 있어 참으로 군자의 벗이 됨에 마땅하다.

강희안 姜希顔 (1417 ~ 1464) 「양화소록 養花小錄」 중

 

 

 

우리나라 수석문화는 삼국시대 원지 園池문화의 일환인

석가산 石假山의 형태로 시작되어 조선시대에 이르러 꽃을 피웠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돌을 태고의 견고성을 간직한

항구 불변의 존재로 여겨 '변치 않는 지조와 절개'라는

군자의 품성과 연관지어 아꼈다.

돌에 대한 선비들의 애호는 여러 책 속에서 쉽게 발견된다.

조선 전기 세조 때의 명신 강희안은 그가 지은 「양화소록 養花小錄」을 통해

괴석을 감상하고 연출하는 방법을 자세히 기술하며

괴석의 확고부동한 덕을 칭송하였다.

또한 조선중기 문신 윤선도 尹善道는 시조 「오우가 五友歌」 셋째 수에

"꽃은 무슨 까닭에 피자 마자 곧 져 버리고,

풀은 또 어찌하여 푸르러지자 곧 누런빛을 띠는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은 바위뿐인가 하노라."고 적어

돌의 불변함을 선비의 덕성에 대응시켜 예찬하였다.

돌에 대한 선비들의 경외사상은 고화 古畵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데 대표적인 것이 괴석도 怪石圖이다.

괴석은 그것이 지닌 불변성이 이상적인 군자의 모습에 부합한다고 여겨져

사군자와 더불어 문인화의 소재로 많이 등장하였으며

괴석도로 알려져 대표 문인화가로는

허련 許鍊, 조윤형 曺允亨, 정학교 丁學敎, 심사정 沈師正, 최북 崔北 등이 있다.

고난 속에서도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명분과 의리를 중시했던

조선시대 선비들은 세속에 살면서도 자연회귀를 항상 염두에 두었다.

이에 대자연으로 상징되는 산의 골격을 이루는 존재인

괴석을 가까이 두고 명산 보듯 즐겼으며,

이로 인해 괴석을 수집하고 감상하는 풍조가 형성되었다.

추사 김정희 秋史 金正喜는 『완당전집 阮堂全集』 「괴석전」에서

"반이랑 구름 섬돌에 뭇 돌이 무리지어,

머리마다 주름지고 구멍마다 영롱하다."며 괴석의 신비로움을 노래했고,

조선 중기 문신 최립 崔岦은 「간이집 簡易集」에서

"내가 이 괴석을 얻은 뒤로는 화산 花山 쪽에 머리를 돌려 앉지 않았다."며

자신이 가진 괴석이 중국의 명산보다 더 훌륭하다고 자랑했다.

 

 

 

 

 

 

 

 

 

연봉형산수경석 連峰形山水景石 (왼쪽)

남한강

 

도형산수경석 島形山水景石 (오른쪽)

남한강

 

 

 

큰 것은 곤륜산 崑崙山을 나타내고, 작은 것은 갈석산 碣石山을 본떴네.

누가 알리 만 리의 아취 雅趣, 묵상 默想하면 어언간 다가오는 것을

 

장현광 張顯光 (1554 ~ 1637) 『여헌집 旅軒集』 중

 

 

 

 

 

 

우리나라 수석 산지

탐석 探石은 주로 강과 바다와 산에서 이루어진다.

여기에서 탐석한 돌을 각각 강돌, 바닷돌, 산돌이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수석이 탐석되는 장소는 약 100여 곳이며,

특히 충북, 경남, 경북지역과 다도해 지역에 많이 흩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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