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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⑮ 밀리고 밀리는 전선

[6·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⑮ 밀리고 밀리는 전선 국군과 미군, 연합군을 한강 이남까지 밀어낸 중공군의 3차 공세는 1950년 12월 하순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었다. 사진은 임진강 부근까지 내려온 중공군 포병들이 12월 31일 국군 등이 포진한 남쪽을 향해 포격을 가하고 있는 모습이다. [백선엽 장군 제공] 전쟁에서 적에게 한 번 등을 보이면 이를 되돌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거센 물결에 떼밀려 하염없이 떠내려 가야만 한다. ‘크리스마스 공세’로 소강상태에 있다가 섣불리 중공군을 밀어붙이려 했던 게 아무래도 탈이었다. 힘겹게 들어섰던 평양을 다시 적의 수중에 내주고 밀리기 시작한 지 2주쯤 지났을까. 정신없이 내려오다 보니,내가 그해 6월 25일 적을 처음 맞았던 임진강이 다시 눈..

[6·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⑭ 전시 사단장의 하루

[6·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⑭ 전시 사단장의 하루 중공군 2차 공세에 밀려 후퇴를 거듭하면서 마음고생이 심했던 백선엽 국군 1사단장(가운데)이 1951년 초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 마련된 사단본부에서 참모·고문관과 작전회의를 마친 뒤 촬영한 모습이다. [백선엽 장군 제공] 말라리아는 고통스럽다. 낮에는 오한이 심하게 닥친다. 그래도 1950년 12월 당시에는 겨울이라서 증상이 덜했다. 여름의 말라리아는 지독하다. 후퇴를 거듭하던 시점에 맞았던 말라리아는 때가 비록 겨울이었지만 심적으로 느끼는 고통의 강도는 여름보다 더했던 것 같다. 말라리아로 잠 못 든 새벽, 헤어진 노모·아내·딸 얼굴이 … 이럴 때면 늘 손에 조그만 버너를 들고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 낙동강 전선에서부터 국군 1사단..

[6·25 전쟁 60년] “운산 수수밭서 격투 끝에 첫 중공군 포로 붙잡아”

[6·25 전쟁 60년] “운산 수수밭서 격투 끝에 첫 중공군 포로 붙잡아” 1950년 10월 24일 평북 운산에서 중공군 포로 1호를 붙잡은 김대일씨. [신인섭 기자] 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회고록 ‘내가 겪은 6·25와 대한민국’이 연재되면서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이에 중앙일보는 전쟁을 겪었던 세대들의 다양한 경험담을 증언석 형식을 통해 싣기로 했다. 동족상잔의 비극적 속내를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다. 1950년 10월 24일 운산전투에서 첫 중공군 포로를 잡은 김대일씨의 증언을 먼저 싣는다. 첫 중공군 포로 를 잡은 경위가 구체적인 증언으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6·25를 말한다 - 나의 증언석 낙동강서 입대한 학도병 1기 78세 김대일씨 경..

6 · 25전쟁 60년 2021.05.28

[6·25 전쟁 60년] 중공군 개입한 첫 전투 한국전쟁서 국제전으로

[6·25 전쟁 60년] 중공군 개입한 첫 전투 한국전쟁서 국제전으로 중앙일보가 연재하는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을 보면 1950년 10월 말에 벌어진 운산전투는 ‘동아시아 국제전쟁’의 서막이었다. 당시 중공군 포로가 처음 잡힘으로써 중공군의 한국전쟁 개입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국군 1사단을 이끌고 평안북도 운산에 진출한 백선엽 사단장은 일선에 나가 있던 15연대에서 붙잡은 중공군 포로를 통해 중국의 개입을 확인했다. 김대일씨 참전한 운산전투 중국어를 할 줄 알았던 백 사단장은 포로를 직접 심문한 뒤 1사단을 지휘하고 있던 미 1군단의 프랭크 밀번 군단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한다. 밀번 군단장도 현장에 도착해 중공군 포로를 심문했다. 밀번은 이 사실을 바로 도쿄(東京)에 있던 유엔군 총사령부의 더글러스 맥아더..

6 · 25전쟁 60년 2021.05.28

[6·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⑬ 12월 맥아더의 철수 결정

[6·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⑬ 12월 맥아더의 철수 결정 백선엽 사단장이 이끄는 국군 1사단이 1950년 12월 5일 평양 동부 지역을 지나 남으로 후퇴하고 있다. 중공군 2차 공세에 밀린 국군 1사단은 사리원을 거쳐 임진강까지 퇴각했다. 곧이어 시작된 중공군 3차 공세로 이듬해 1월 4일 서울을 공산세력에 다시 내준 것이 ‘1·4 후퇴’다. [백선엽 장군 제공] 전황(戰況)이 다급해졌다. 1950년 12월 초, 국군 2군단이 무너지면서 동쪽으로 내려오는 중공군의 기세가 막힘이 없었고, 그 서쪽을 방어하던 미 2사단이 큰 타격을 받고 넘어졌다. 청천강 방어선을 지키기 힘든 상황이 됐다. 이제 평양과 원산을 잇는 라인에 방어선을 새로 설치해야 했다. 미군, 퇴각하며 군수품 태워 … 평양..

[6·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⑫ 인디언 태형(笞刑)

[6·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⑫ 인디언 태형(笞刑) 인디언이 적군을 잡았을 때 가하는 형벌이 있다. 먼저, 전사(戰士)들이 두 줄로 길게 늘어선다. 그 다음 적군 포로를 그 사이로 지나가게 하고는 두 줄로 늘어선 전사들이 그를 사정없이 두들겨 패는 형벌이다. 이를 ‘인디언 태형(gauntlet)’이라고 부른다. ‘죽음의 협곡’ 벗어나니 한 중대는 170명 중 10명만 살아 1950년 11월 30일, 평안남도 개천군 군우리 남쪽의 길고도 좁은 계곡에 빠졌던 미군이 중공군에 당한 게 바로 이 인디언 태형을 연상케 한다. 미군은 빠져나가기에는 너무 힘들 정도로 깊은 늪 속에 빠졌다. 이곳에서 미 2사단은 2개 연대와 포병부대, 사단직할부대, 공병대대 등의 전력을 상실했다. 1950년 11월 ..

[6·25 전쟁 60년] 운산 전투-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⑪ 병사가 많았던 옛 땅 군우리

[6·25 전쟁 60년] 운산 전투-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⑪ 병사가 많았던 옛 땅 군우리 중공군들이 1950년 11월 30일 평북 개천 군우리 남쪽의 계곡에서 퇴각하는 미 2사단 병력을 공격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미군들이 나중에 ‘시련의 길’로 불렀던 이 지역에서 미 2사단은 2개 연대와 공병대대 등 전체 병력의 3분의 2가 궤멸하는 타격을 입었다. [백선엽 장군 제공] 중공군은 전력이 약한 상대를 집중적으로 공격해 왔다. 화력이 우세한 미군을 피해 전쟁 내내 국군을 집중 공격했다. 국군이 여러 면에서 미군에 뒤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 2사단, 10㎞ 길고 긴 협곡으로 퇴각 … 비극은 시작됐다 2차 대공세를 펴는 중공군의 노림수는 우선 동쪽 전선에 있었다. 국군 2군단이다. 2군단은 운산 전투가..

[6 · 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⑩ 11월 말 공격 그리고 후퇴, 후퇴

[6 · 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⑩ 11월 말 공격 그리고 후퇴, 후퇴 국군 1사단이 1950년 10월 평양으로 진격할 당시 백선엽 사단장(가운데)이 미 공군연락장교로 와 있던 윌리엄 메듀스 대위(오른쪽)와 작전을 논의하고 있다. 박천에서 중공군의 저격을 당했던 메듀스 대위는 후일 미 공군참모차장(대장)에 올랐다. [백선엽 장군 제공] 갑자기 총탄이 스쳐 지나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 직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옆에 있던 미군 공군연락장교 윌리엄 메듀스 대위가 가슴을 부여안더니 쓰러졌다. 1950년 11월 하순의 일이다. “밀리면 끝” 단내 나도록 독려 … 뚫릴 뻔한 전선 사흘간 버텨 평안남도 입석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전력까지 보충했던 국군1사단 병력을 이끌고 청천강을 건..

[6·25 전쟁 60년] 운산 전투 -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⑨ 전장에서 만난 영웅

[6·25 전쟁 60년] 운산 전투 -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⑨ 전장에서 만난 영웅 1950년 10월 평양에 처음 입성한 국군 1사단의 공을 기려 프랭크 밀번 미1군단장(오른쪽)이 평양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백선엽 사단장에게 은성무공훈장을 걸어주고 있다. 백 사단장의 키는 1m75㎝ 남짓, 밀번 군단장이 5~6㎝ 정도 작아 보인다. [백선엽 장군 제공] 이 대목에서 미군의 한 지휘관을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6·25전쟁 기간 중 미군의 제2차 세계대전 영웅들을 수없이 만났다. 더글러스 맥아더, 월턴 워커, 매튜 리지웨이, 제임스 밴 플리트, 맥스웰 테일러 등이다. 당대 최고 엘리트인 그들과 전쟁을 함께 치르면서 나는 미군의 뛰어난 시스템과 노하우, 지략을 배웠다. 군사 스승 밀번, 작전까지 바꿔 ‘한..

[6·25 전쟁 60년] 운산 전투 -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⑧ 달콤한 휴식

[6·25 전쟁 60년] 운산 전투 -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⑧ 달콤한 휴식 운산 전투 며칠 뒤인 1950년 11월 초 연예인 위문단이 평양 북쪽의 평안남도 안주군 입석에 주둔했던 국군 1사단을 찾아 공연을 하고 있다. [백선엽 장군 제공] 우리는 미군의 희생을 뒤로하고 평안북도 운산에서 청천강 남쪽으로 내려왔다. 평양 북쪽의 평안남도 안주군 입석(立石: 영변 주변의 입석과는 다른 지역)이라는 곳에 도착해 재정비를 했다. 청천강 남쪽에는 반격을 위한 교두보가 만들어졌다. 청천강을 자연적인 방어선으로 설정한 것이다. 그곳에는 청천강을 건너 서북쪽인 신의주 방향으로 진격하다가 별다른 피해 없이 후퇴해 내려온 미 24사단, 평북 구성 방향으로 진출하다 역시 무사히 퇴각한 영국군 27여단이 방어막을 형성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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