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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63

[ ⑯ 우남의 후계자]

[ ⑯ 우남의 후계자] 이승만 서거 후 프란체스카 여사 만난 박정희 이승만 서거 후 한국으로 돌아온 프란체스카 여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의 경제정책인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은 이승만이 추진한 '경제개발 3개년 계획' 에 바탕을 두었다. 그런 측면에서 이승만의 실질적 후계자는 박정희였다. / '사진과 함께 읽는 대통령 이승만' (기파랑) 독립운동 세대서 경제 발전 세대로··· 이승만 후계자는 박정희였다 김구는 국내 정치 뿌리 얕았고 정적 암살 혐의로 입지 축소돼 미군정이 택한 김규식은 내리막 명망 높던 송진우 · 장덕수도 희생 장면 정권은 혼란 속에 내부 분열 박정희, 시장경제 중요성 깨닫고 이승만 성취 토대로 '한강의 기적' 경제 · 안보 밑거름 된 한일 수교 이승만이 ..

[<15> 제1차 세계대전과 대한독립운동]

[ 제1차 세계대전과 대한독립운동] 1914년 '칭다오 전투'를 묘사한 그림.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은 영국군, 프랑스군과 함께 칭다오를 차지하고 있던 독일군, 오스트리아ㅡ헝가리군을 공격했다. 이 전투에서 쌍방 약 1000명이 전사했다. 전투 결과 일본군, 영국군, 프랑스 해군이 승전의 축배를 들었다. 중화민국은 칭다오 전투에 참전하지 않았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제국들의 해체··· 최초의 '세계전쟁'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태어났다 中 칭다오, 獨 먼저 차지했지만 日 대규모 침공 승리의 축배 1차 대전 끝난 뒤 독일 제국 해체 민족자결주의 물결··· 臨政도 탄생 하지만 열강들은 日 전승국 인정 파리평화회의서 韓 찬밥신세로 임정 탄생 이듬해 신년축하회 안창호 "이천만 다 군인되어야···" 그해 10..

[⑬ 1954년 한미상호방위조약]

[⑬ 1954년 한미상호방위조약] 포사격 훈련 보는 이승만 · 아이젠하워 · 백선엽 1952년 12월 4일 경기 광릉 수도사단에서 아이젠하워 (앞줄 왼쪽에서 둘째) 당시 미 대통령 당선자가 망원경으로 기갑부대의 기동, 포 사격 훈련을 참관하는 모습. 앞줄 왼쪽은 이승만 대통령이고, 오른쪽 끝에는 백선엽 육군참모총장이 서 있다. 1953년 7월 12일 미국과의 합의를 통해 한국은 휴전에 반대하지만 방해하지 않기로 했고, 미국은 휴전이 성립된 뒤 빠른 시일 안에 한국과 상호 방위 조약을 맺기로 약속했다. / 조선일보 DB '조국 수호' 밀서 들고 美 찾은 지 50년만에··· 한미방위조약 맺었다 이승만 끌어내리려 했던 美 李가 반공포로들 전격 석방하자 美, 비밀리에 李 내치려 했지만 한국민 반발 우려해 대화 ..

[⑫ 6 · 25 반공 포로 석방]

[⑫ 6 · 25 반공 포로 석방] 풀려난 반공 포로들, 이승만 초상화 들고 행진 석방된 반공 포로들이 태극기와 이승만의 초상화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이승만은 6 · 25전쟁 휴전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53년 6월 18일 반공 포로 2만7000여 명을 석방했다. 반공 포로들이 고국에서 추방되거나 북한으로 끌려갈 위험에서 구한 것이었다. / ‘사진과 함께 읽는 대통령 이승만’ (기파랑) 美 반대에도 반공포로 석방··· 납북될뻔한 남한 청년 2만명 구했다 휴전 회담 쟁점이었던 '포로 송환' 北에 갈제징집 당한 남한 장정들 수용소서 친공포로들 박해 시달려 매일 인민재판 받고 처형까지··· 유엔군은 회담 의식해 대응 안해 美 주도 휴전 반대하며 '석방 작전' 수용소 철조망 끊고 포로들 구출 美 등 전세..

[⑪ 이승만은 왜 반대했나]

[⑪ 이승만은 왜 반대했나] 아이젠하워 만나 태극기 선물 6 · 25 전쟁 중이던 1952년 12월 2일 한국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 당선인 아이젠하워가 미군 부대 시찰 도중 이승만에게 태극기를 선물받고 있다. 아이젠하워는 1952년 11월 실시된 미국 대선에서 휴전을 공약했다. 1951년 7월 휴전협상이 시작된 이후 이승만이 지속적으로 휴전에 반대하자 미국은 이승만의 대통령 재선을 막는 방식으로 축출하려고 했다. / '사진과 함께 읽는 대통령 이승만' (기파랑) "적이 다시 힘 키울 기회를 줄 순 없소" 이승만은 휴전을 반대했다 미국의 휴전 협상에 적극 비판 "언젠가 중국이 다시 침입한다면 누가 함께 싸워준다는 보방 없다" 국군 내부선 모반 움직임 참모총장 이종찬 등 日軍 출신들 미국에 은밀히 군사 반란..

[⑨ 6 · 25 반격과 북진]

[⑨ 6 · 25 반격과 북진] 38선 돌파하는 국군 ㅡ 6 · 25전쟁 당시인 1950년 10월 1일 38선을 돌파하며 제1군단장 김백일 준장이 ‘아아, 감격의 38선 돌파’ 라는 문구를 말뚝에 쓰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맥아더 원수가 38선 돌파를 망설이자 정일권 육군 참모총장에게 '38선 돌파에 관한 지령' 을 내린 바 있다. 정 총장은 김 군단장과 함께 9월 30일 3사단 23연대를 찾아 북진 명령을 내렸다. / 조선일보 DB 맥아더가 망설이자, 이승만은 국군의 38선 돌파를 결심했다 미국 방어선에서 한국 · 대만 제외 애치슨 라인은 "침공하라" 초대장 한달 후 매카시 "공산주의자 침투" 미국 내 공산주의 득세 논쟁 가열 트루먼 정권 6 · 25 개입 이끌어 내 맥아더, 인천 상륙 후 북진 유보..

[나무박사 박상진이 들려주는 청와대의 대통령 나무 <上>]

[나무박사 박상진이 들려주는 청와대의 대통령 나무 ] 이승만 대통령이 1960년 3월 25일 청와대 (당시 경무대) 녹지원 서쪽 계곡에 전나무를 심고 있다 (왼쪽). 오른쪽 사진은 한 아름 둘레의 거목으로 자란 전나무의 현재 모습. 박상진 교수가 “키가 25m나 된다"고 손을 높이 올려 보였다. / 국가기록원 · 이태경 기자 소나무 몇 그루뿐이던 70년 전 청와대··· 이승만이 심은 나무는 숲이 됐다 1948년 황폐했던 녹지원 서쪽에 빨리 자라고 줄기 곧은 전나무와 미국 동부에서 친숙하게 봐왔던 백합나무 · 루브라참나무 등 심어 나무 뒤로 보이는 본관 지붕 덕에 1960년 심은 기념식수로 확인돼 "관람객들 산책하다 절경에 감탄··· '이승만 대통령 숲' 으로 불리기를" 청와대에는 역대 대통령의 사연이 깃..

기타 2023.12.30

[⑦ 건국 과정의 완결]

[⑦ 건국 과정의 완결] 1948년 8월 15일 중앙청 광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포식에서 이승만과 맥아더 연합군 최고사령관이 나란히 앉아있다. 이승만은 선포식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끝까지 변함없이 민주주의의 모범적 정부임을 세계에 표명되도록 매진할 것을 선언한다” 고 했다. / 조선일보DB 득표율 90%로 대통령 당선··· 취임식 끝나자마자 집무 시작했다 위기 속에 탄생한 대한민국 경제 빈약하고 치안마저 불안 행정 경험 있어도 친일파 몰려 국가 운영할 인적 자원도 부족 제대로 된 軍 없는데 미군 철수 신생국가 안착시킨 국정 운영 유엔 "한반도 유일 합법국가" 정적 조봉암을 발탁해 농지개혁 건국 마지막 시험대 2대 총선도 공정하게 치르며 '자유민주' 확립 1948년 7월 20일 국회에서 정부통령..

[⑥ 대한민국 헌법 제정]

[⑥ 대한민국 헌법 제정] 1948년 7월 24일 초대 대통령 취임 1948년 7월 24일 오전 10시 중앙청 광장에서 초대 대통령 및 부통령 취임식이 열렸다. 연단에 선 이승만은 “국헌을 준수하며, 국민의 복리를 증진하며, 국가를 보위하며, 대통령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 이라고 선서했다. 당시 거의 모든 의원은 내각책임제를 지지했지만, 이승만은 사실상 혼자 힘으로 대한민국 헌법이 대통령제를 채택하도록 이끌었다. / ‘사진과 함께 읽는 대통령 이승만’ (기파랑) 의원 대부분 내각제 지지했지만, 혼자 힘으로 대통령제 이끌다 내각제로는 혼란 수습 힘들다 판단 입헌군주제서 연유한 내각책임제 군주 없는 국가선 제 기능 힘들어 "내각제 땐 어떤 지위도 안맡겠다" 한민당 압박, 대통령제 관철시켜 이승만 하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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