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회 五賢人의 날 참석차 제주여행] 21
권기갑 기증 사진 <제주의 馬>
2014년 기증
제주도 전도 濟州島 全圖
조선총독부 발행
1921년
제주기 1171, 2003년 한상복 기증
1921년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제주도 지도이다. 북부와 남부 2장으로 제작되었다. 1918년 토지조사사업의 일환으로 임시토지조사국에서 1 : 50,000의 축척으로 제작한 바 있는데, 이 지도는 1 : 200,000 축적의 제주도 전도 全圖이다.
탐라관풍안 耽羅觀風案
김석익 金錫翼 (1885 ~ 1956)
20세기
제주기 8, 2002년 김계연 기증
고려시대부터 1945년까지 제주 관리를 평가한 기록이다. 고려시대의 현령 縣令 최척경 崔陟卿을 시작으로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 파직된 마지막 도사 島司 오노 토라이시 小野虎市에 이르기까지 사람마다 취임 · 이임 시기 및 교체 사유를 적어 관리들의 공과를 담고 있다. 부록에는 제주 출신 문과 (생원진사시 포함) 급제자들의 명단을 적은 빈흥록 賓興錄이 수록되었다.
제주도관광안내서 濟州道觀光案內書
제주관광안내소출판부 발행
1955년
제주기 1186, 2010년 Marion, E Current 기증
1955년 4월 제주에 최초에 여행사인 '제주관광안내소' 가 설립되었다. 「제주도관광안내서」는 제주에서 발간한 최초의 관광안내서로 제주관광안내문, 영주 10경, 한라산 안내도가 게재되어 있다.
탐라의 여자들이 잠수를 잘한다.
열 살 때 벌써 앞 냇가에서 배운다 한다.
···
잠녀, 잠녀 그대들 즐거워 떠들고 있다마는
보는 나는 슬프구나.
신광수 申光洙 (1712 ~ 1776), <잠녀가 潛女歌>
돌담 쌓아 초가집 짓고 울타리는 낮게 세웠네.
시골 아낙은 허벅으로 물 긷고
말테우리는 피리 비껴 불며 아이들과 함께 돌아오네.
최부 崔溥 (1454 ~ 1504), <탐라시 耽羅詩>
장군이 바다를 끼고 열흘 동안 섬을 도는데
문관과 무관, 목축하는 재주까지 겸해야 하지
이형상 李衡祥 (1653 ~ 1733), 《순력기행 巡歷紀行》
영주 瀛洲로 가는 길, 날개 돋힌 듯
피리불며 선경 仙境으로 인도하오.
조성립 趙誠立, 《한라산기 漢拏山紀》
누런 귤 집집마다 저절로 숲을 이루니
동정호 洞庭湖 가에 있는 양주 楊州인 듯 가을빛이 깊었네.
이한우 李漢雨 (1818 ~ 1881), 《영주십경 瀛州十景 중 귤림추색 橘林秋色》
북쪽에는 큰 바다요, 남쪽에는 높은 산이로다.
집집마다 귤과 유자요, 곳곳마다 준마 駿馬로다.
고득종 高得宗 (1388 ~ 1452), 《홍화각기 弘化閣記》
유배된 사람들 流配人
조선시대 제주에 유배된 사람들은 광해군을 비롯해 왕족 · 양반 · 도적 등 다양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사화 士禍와 당쟁 黨爭이 심해지면서 제주도 유배는 정치인의 다수를 차지하였습니다. 이들의 활동은 엄격히 제한되었지만, 성리학적 학식과 덕망을 갖춘 선비로서 후학을 양성하며 지낸 유배인도 있었습니다. 김정희 金正喜 (1786 ~ 1856)는 제주에서 추사체를 완성하였고 제주 지역의 학문과 예술 발전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송시열의 글씨 宋時烈遺墨
송시열 宋時烈 (1607 ~ 1689)
조선 17세기
국립중앙박물관, 동원 3439, 이홍근 기증
17세기 노론의 영수로서 당시 정계를 주도하였던 송시열의 유묵이다. 송시열의 글씨는 송준길 宋浚吉 (1606 ~ 1672)과 함께 당시에 양송체 兩宋體라 불릴 정도로 이름이 높았다. 특히 큰 글자 大字에 뛰어났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런 면모를 볼 수 있다. 송시열은 1689년 (숙종 15) 기사환국 때 83세의 고령으로 제주도에서 111일의 짧은 유배 생활을 하였지만, 귤립서원 橘林書院에 배향되어 제주 학문 발전에 기여한 다섯 성현인 오현 五賢의 한 명으로 기려졌다. 오현은 송시열 이외에도 중종대 유배된 김정 金淨 (1486 ~ 1521)과 제주목사로 부임한 송인수 宋麟壽 (1487 ~ 1547) 선조대 안무사로 부임한 김상헌 金尙憲 (1570 ~ 1652), 광해군 대에 유배 온 정온 鄭蘊 (1569 ~ 1641)이 있다.
충암집 沖庵集
김정 金淨 (1486 ~ 1521)
조선 16세기
국립중앙도서관, 복제품
조선 전기의 문신 김정의 문집이다. 김정은 조광조 趙光祖 (1482 ~ 1520)가 주도하던 개혁 정치를 함께 이끌었던 사람으로 기묘사화 己卯士禍 때 진도에 유배되었다가 제주로 옮겨진 뒤 36세의 젊은 나이로 사약을 받고 죽었다. 그의 문집인 『충암집』에는 1520년 8월부터 1521년 10월에 걸친 제주에서의 유배생활을 기록한 「제주풍토록」이 실려 있다. 「제주풍토록」에는 제주의 기후 및 지리적 환경, 풍물과 풍습, 언어와 사회상, 토산물과 특산물, 유배에 대한 소감 등을 기록하였다. 그가 제주에서 머문 것은 1년 남짓이었지만 제주도 사람들에게 완숙한 성리학 이론을 접하게 해주어 제주 오현 五賢의 으뜸으로 추앙되며 귤립서원 橘林書院에 배향되는 첫 번째 유현 儒賢이 되었다.
완당선생 초상 阮堂先生像
김석익 金錫翼 (1885 ~ 1956)
1924년
2002년 김계연 기증
심재 김석익이 김정희 金正喜 (1786 ~ 1856)를 흠모하여 그린 초상화이다. 김정희는 1840년 (헌종 6)에 제주 대정현으로 유배와서 1849년까지 머물렀다. 그는 이곳에서 추사체를 완성하고 학문에 힘썼으며 강사공, 박계첨, 이시형, 김여추, 이한우 등 제주 사람들에게 학문과 서예를 가르쳐 스승으로서 존경을 받았다.
김정희 편지 金正喜簡札
김정희 金正喜 (1786 ~ 1856)
조선 1842년
국립중앙박물관 / 구 5233, 2006년 구입
김정희가 1842년 3월 4일에 부인에게 보낸 한글편지다. 그 내용은 양자인 상무가 제주에 오려한다는 소식을 듣고 극구 만류하는 것인데, 당시의 제주 왕래는 몹시 험난한 일이었던 까닭에 종손의 안전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편지에서 김정희는 며느리를 들일 때 제사 차리는 일을 가장 먼저 가르칠 것도 강조하였다.
채용신 蔡龍臣, <최익현 초상 崔益鉉 肖像> 190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물 제1510호
비답 필사본 批答筆寫本
20세기
제주기 284, 2002년 김계연 기증
조선 말기 유학자이자 항일의병장인 최익현 (1833 ~ 1906)이 1904년 (고종 41) 의정부찬정 議政府 贊政으로 임명받자 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자신은 무능력하고 병이 들어 직무를 수행하기 어려우니 젊고 유능한 사람을 등용하는 것이 좋다는 내용의 사직 상소를 고종에게 올렸다. 최익현의 계속되는 상소에 고종은 최익현을 옆에 두고 싶어 병을 핑계 대지 말고 빨리 직무를 수행하라고 연이어 비답을 내렸다. 최익현은 1873년 제주에 유배된 바 있다. 당시 안달삼 · 강기석 · 김용징 · 김훈 · 김치용 · 김양수 · 이기온 · 강철호 등과 같은 제주 문인들과 교류하였으며 유배가 풀리자 한라산을 등반하여 <유한라산기 遊漢拏山記>라는 기행문을 남겼다.
바다로 열린 섬 漂流 · 漂着
섬은 바다로 열려 있는 특수한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주도는 고대부터 해성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해왔습니다. 중국과 일본, 동남아 지역을 왕래하던 선박들에게 제주는 중도 기항지로 중요한 섬이었습니다. 제주인은 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하거나 상선을 이끌고 주변국과 교역을 하는 길에 뜻하지 않게 표류하기도 하였습니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다른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은 다양한 문물과 지식을 전해주었습니다. 한편으로 제주도 주변의 바람과 해류는 먼 나라의 이방인들을 제주로 끌어들이기도 하였습니다. 먼 이국에서 온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조선과 제국의 모습을 알리기도 하였습니다.
표류로 얻은 뜻밖의 견문 漂流 見聞
조선시대는 사대교린 事大交隣의 외교 정책으로 중국이나 일본으로 제한된 항로만 열어두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표류는 이국적인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습니다. 해난 海難 사고가 많은 제주에서는 바람을 잘못 만나 중국 명 明 · 청 淸, 왜 倭, 류큐 流球 (오키나와), 타이완 臺灣, 여송 呂宋 (필리핀), 안남 安南 (베트남)까지 표류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바다로 나가 표류하면 대부분 돌아오지 못했지만 생사의 위기를 극복하고 무사히 돌아온 사람들은 표류 기간에 보고 들은 것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표해록 漂海錄
최부 崔溥 (1454 ~ 1504)
조선 1540년 이전
고려대학교도서관 / 복제품
최부가 풍랑을 만나 표류한 일을 기록한 책이다. 최부는 1487년 (성종 18) 제주목에 추쇄경차관으로 부임하였다가 부친상을 당하여 급히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태풍을 만나 중국에 도착하였다. 조선인으로서 중국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였던 강남과 산동 지방을 여행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최부는 돌아오자 성종의 명으로 견문기를 일기체로 써서 바쳤다.
표해록 漂海錄 (목활자본)
최부 崔溥 (1454 ~ 1504)
조선 1896년
제주 15994, 2016년 구입
조선시대 간행된 6개의 판본 가운데 가장 늦은 것이다. 1896년 (고종 33) 최부 후손들이 강진에서 정리자체 목활자로 간행한 『금남집』 속에 포함되어 있어 '탐진최씨금남선생표해록' 이라고도 불린다.
표해록 漂海錄
장한철 張漢喆 (1744 ~ ?)
조선 1771년
제주기 1303, 2016년 장시영 기증
장한철이 표류한 일을 기록한 책이다. 1770년 장한철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중에 풍랑을 만나 일본 오키나와 근처 섬에 닿았다가, 안남에서 일본으로 가는 상선에 구조되어 제주로 돌아왔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양지식, 제주의 신화와 전설, 문학적 상상력을 가미하여 표해록을 완성하였다.
표해일기 漂海日記
양우종 梁佑宗 (1863 ~ 1917)
조선 1894년
2010년 양경두 기증
조선시대 절충장군이었던 양우종 (1863 ~ 1917)이 1893년 한양으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류큐 (오키나와) 지역에 표류기록은 당시 외국의 실정을 아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천하도 天下圖
조선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 M118
조선시대 사람들의 관념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세계 지도이다. 17세기 이후 조선에는 서구식 세계지도가 전래되어 중국 외에도 넓은 세계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하지도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 형태로 하여, 내대륙ㅡ내해ㅡ외대륙ㅡ외해의 구조에 중국을 세상의 중심으로 표현하였다.
조선총도 朝鮮總圖
조선 1805년
국립중앙박물관
동원 3806, 1981년 이홍근 기증
휴대용으로 제작된 지도첩으로 13면 접지 형식이다. 조선 후기에 유행하는 지도 방식을 따라 세계지도 1면, 외국지도 (중국, 일본, 류큐) 3면, 조선지도 9면 (조선총도 1면, 도별도 8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지도에는 조선을 붉게 표시하였고 주변에 불사국 不死國, 삼수국 三首國 등 상상의 국명을 배열하였다.
이방인의 눈에 비친 제주 西洋人 漂着
1653년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 Hendrick Hamel (1630 ~ 1692)은 항해 중 제주에 표착했다가 조선에 13년간 억류되었습니다. 본국으로 돌아가 남긴 『하멜표류기』는 유럽에 조선을 소개한 최초의 기록입니다. 하멜은 처음 제주도에 도착햌ㅆ을 때 이곳을 '퀄파트' 라고 생각했습니다. '퀄파트' 는 1642년경 제주도 근처를 항해했던 퀄파트 드 브락 Quelpart de Brack이란 배의 이름을 딴 것으로 서양에서 제주도를 칭하던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멜 표류기 哈梅爾 漂流記
하멜이 쓴 보고서를 바탕으로 소설로 출간한 책이다. 하멜은 1653년 (효종 4) 제주 대정현에 표착했다. 36명이 생존하였는데 네덜란드 출신의 귀화인 박연 朴延을 불러와서야 소통할 수 잇었다. 전라좌수영에 배속되었던 하멜 일행 8명은 13년 후 어선으로 탈출하여 나가사키에 이르렀고, 그로부터 2년 후인 166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도착하였다.
1. 개리 레드야드가 쓴 하멜표류기
1975년
제주기 1169, 2003년 한상복 기증
2. 이병도 번역 (1946) 하멜표류기
헨드릭 하멜 (1630 ~ 1692) / 1946년 이병도 역주
제주기 1167, 2003년 한상복 기증
하멜 보고서 哈梅爾 報告書
핸드릭 하멜 (1630 ~ 1692)
17세기
복사본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의 서기였던 하멜이 조선에서의 생활을 기록한 보고서이다. 헨드릭 하멜은 제주 표착 과정과 조선에서의 억류 과정, 조선의 문물, 생활 풍속들을 기록해 동인도회사에 이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조선 · 유구항해기 朝鮮琉球航海記
바실 홀 (1788 ~ 1844)
런던, 1818년
영국인 바실 홀이 1818년 영국에서 발행한 조선과 유구 항해기이다. 영국의 해군 장교이며 여행가인 바실 홀이 1816년 2월부터 1817년 10월까지 중국, 조선, 오키나와, 인도 등지를 항해한 뒤 이때의 항해를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조선남해안지도 朝鮮南海岸圖
에드워드 벨처 (1799 ~ 1877)
19세기
제주기 1287, 2002년 유홍준 기증
영국 군함 사마랑 (Samarang) 호가 1845년에서 1884년까지 조선의 해역을 조사하고 그린 지도이다. 에드워드 벨처는 세계 각지의 해안선 측량에 참가한 영국 해군으로 1845년 6월 25일에 제주도에 도착하여 우도를 기지로 삼고, 중국인을 통역으로 대동하여 약 37일 동안 제주도, 거문도, 거금도 일대를 정밀하게 측량하였다.
중국 · 타타르 지도 中國 · 韃靼地圖
M. 브리옹 (1756 ~ 1803)
1779년
복제품
아시아지도 亞細亞地圖
마테오 슈터 (1678 ~ 1757)
18세기
복제품
'여행 > 제주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34회 五賢人의 날 참석차 제주여행] 23 (0) | 2023.11.13 |
---|---|
[제34회 五賢人의 날 참석차 제주여행] 22 (0) | 2023.11.09 |
[제34회 五賢人의 날 참석차 제주여행] 20 (0) | 2023.10.30 |
[제34회 五賢人의 날 참석차 제주여행] 19 (0) | 2023.10.26 |
[제34회 五賢人의 날 참석차 제주여행] 18 (0) | 2023.1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