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기념관 등

[대한민국역사박물관 ㅡ 역사관] 16

드무2 2023. 4. 26.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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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역사박물관 ㅡ 역사관] 16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날

 

8월 15일 0시,

미 군정 종료

 

 

 

연합 합탕단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 기념가' 합창

 

 

대한민국 정부 수립 기념가

삼천만 무궁화 새로이 피라 반만년 이어온 단군의 피로

겨레들 모두다 손을 잡으라 민족과 인류의 영원을 위해

우리는 받들자 대한민국을 다같이 받들자 우리의 조국

 

 

 

맥아더를 비롯한 주요 인사 참석 행렬

 

 

 

 

 

 

기념식 준비위원회장

오세창의 개회선언

 

오세창의 개회선언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천하에 선포하는 거룩한 이날에 유엔 각국 대표와 맥아더 원수 등 귀빈 여러분을 모시게 된 것을 광영으로 생각합니다. 8 · 15 이날은 우리가 대한민국으로서는 영원히 경축하는 날입니다. 3년 전 이날로서 우리는 더 경사가 있겠습니까. 역사적인 이날에 미국과 중국은 우리의 정부를 승인하였습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로 발전하여 세계 평화를 일층 더 촉진시켜야 하겠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기념사

民主模範國家를 建設

全民族 이름으로 世界에 宣言

민주모범국가를 건설 전민족 이름으로 세계에 선언

 

 

 

 

 

 

대통령 사열 후 육해경비대 (국군)의 시가 퍼레이드

 

 

 

 

 

 

대한민국정부수립 국민축하식 종료

 

 

 

 

 

 

맥아더 연합군 총사령관 축사

大韓民國의 自主獨立은

人類自由不滅의 一證左

대한민국의 자주독립은 인류자유불멸의 일증좌

 

 

 

 

 

 

1950

6. 25 북한군 전면 남침

6. 26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북한군의 공격중지와 철수권고 결의

6. 28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군사지원 결의안 채택, 북한군 서울 점령

7. 1   미 지상군 선발대 부산 도착

7. 14 국군작전지휘권 유엔군사령관에게 이양

8. 1   낙동강 방어선 형성

9. 15 인천상륙작전

9. 28 서울 수복

10. 1 국군 38도선 돌파하여 북진

10. 7 유엔군 38도선 돌파 유엔 결의

10. 19 평양 탈환, 중국군 개입

10. 26 국군, 압록강 초산 도달

11. 30 유엔군 전면 철수

12. 15 흥남 철수 (흥남부두 출항)

 

1951

1. 4   유엔군 서울 철수 (1. 4후퇴)

2. 1   유엔총회, 중국을 침략자로 결의

3. 15 서울 재탈환

6       전쟁이 전체적으로 교착상태에 빠짐

 

 

 

 

 

 

발발과 전개

1950년 6월 25일 한국을 기습 남침한 북한군은 3일만에 서울을 점령했다. 유엔은 북한군의 철수를 요구했으나, 북한이 이를 거부하자 유엔군을 결성하여 한반도에 파견하였다. 낙동강 전선을 방어하던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켰다. 서울을 수복한 국군과 유엔군은 압록강 국경지역까지 진격하였다. 하지만 중국군의 개입으로 후퇴한 유엔군은 서울을 내주었다가 재차 수복하였다. 이후 전투는 38선 부근에서 교착상태로 접어들었다.

 

 

 

 

 

 

 

 

 

북한군 전투명령 1호

국립중앙도서관

 

전쟁 발발 전인 1950년 6월 22일 북한군 공격부대에 하달된 전투명령 1호이다. 명령서에는 공격 단계에 따라서 각 연대가 수행할 전투 계획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이를 통해 북한이 전면남침 계획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의 기습 남침을 알리는 신문기사

북한의 남침을 보도하는 1950년 6월 26일자 경향신문이다. '괴뢰군전면남침기도'라는 제목과 함께 북한군의 남침이 불법임을 보도하고 있다.

 

1950. 6. 26.

 

 

 

 

 

 

 

 

 

북한의 남침을 보도한 뉴욕타임즈

북한의 남침을 보도한 1950년 6월 25일자 (미국시간) 뉴욕타임즈 1면이다. 러시아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의 남침과 전황 등을 수 면에 걸쳐 보도하고 있다.

 

1950. 6. 25.                                                                                                                                                            뉴욕타임즈

 

 

 

서울 시내를 행군하는 북한군

1950 경향신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유엔군 참전 결의

1950. 6. 27. 유엔기록보존소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문                                                                                                                                   전쟁기념관

 

 

 

 

 

 

❶ 북한의 기습 남친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1차 결의문 (1950. 6. 25.) 북한은 침략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38선 이북으로 철군할 것을 촉구하였다. 북한은 이를 무시하였다.

 

 

 

 

 

 

❷ 2차 결의문 (6. 27.). 북한이 38선 이북으로의 철군을 따르지않고 있기에 유엔 안보리는 군사적 대응의 필요성에 주목하였다. 또한 유엔 회원국들에게 국제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한국에 대한 필요한 지원을 권고하였다.

 

 

 

 

 

 

❸ 3차 결의문 (7. 7.). 유엔군사령부 설치와 회원국들의 지원사항을 유엔군 사령부가 이용할 수 있도록 결의하였다. 유엔군 사령관을 미국이 임명하고, 참전국 국기와 유엔기 사용에 대한 권한을 부여했다.

 

 

 

 

 

 

철모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발굴한 전사자의 철모이다.

 

1950년대

 

 

 

 

 

 

북한군 수첩

"조국해방전쟁에서 조선노동당의 조직적 및 동원적 역할"이라는 글이 적혀 있는 북한군 수첩이다. 북한군의 남침 사전준비를 보여주고 있다.

 

1950년대

 

 

 

 

 

 

 

 

 

 

 

 

 

 

 

박순홍 하사 6 · 25 전쟁 진중일기

이 일기는 1950년 10월부터 전투경찰로 참전한 박순홍의 6 · 25전쟁 참전기록을 담고 있다. 주요 내용은 1951년 미 해병대와 연합작전으로 참여한 강원도 수복전투, 1952년 국군에 징집되어 제주도의 육군 제1훈련소에 입교하여 훈련을 받은 후, 1953년 백두산부대의 창설 멤버로 치열한 중부전선 고지전에 참전한 기록 등이다.

 

1950년대                                                                                                                                                              임채숙 기증

 

 

 

 

 

 

 

 

 

 

 

 

전선으로 이동 중인 국군

1950. 9. NARA

 

 

 

 

 

 

학도의용군 신고서

6 · 25전쟁 당시 학도의용군으로 종군한 사실이 기재되어 있는 신고서이다. 신고자는 대구에서 학도병 모집 소식을 듣고 자원하여 수도사단 직할 학도대 소속으로 복무하였다. 1 · 4후퇴 이후 학교로 복귀하였다.

 

1958. 5. 26.

 

 

 

 

 

 

 

 

 

무운장구 태극기

출정하던 군인들의 무운을 기원하며 남긴 글이 남겨진 태극기이다. "무운장구", "영웅출정 대한민국 국군용사", "용사의 두 어깨에는 삼천만을 짊어져 있습니다"와 같은 글이 적혀있다.

 

1950년대

 

 

 

 

 

 

이는 불시착한 미국 병사이다.

가장 가까운 국제연합군대에 연락인도하여

주시면 우리는 당신에게 보답하겠습니다.

 

 

 

안전보장 표식

미 공군이 사용한 안전보장표식이다. 비행기가 불시착했을 경우 조종사의 안전을 보장하고 현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1950년대

 

 

 

 

 

 

 

 

 

국민대회 대통령 치사

이승만 대통령이 정부의 서울 환도와 평양 탈환을 축하하고 유엔군을 환영하는 국민대회에서 연설한 내용이다.

 

1950. 10. 17.                                                                                                                                                  국가기록원 복제

 

 

 

 

 

 

미군 부대 중 처음으로 한국에 도착한 스미스 부대

1950. 7. 1. 국가기록원

 

 

 

 

 

 

낙동강 방어선에서 경계 중인 병사

1950. 국가기록원

 

 

 

 

 

 

보급품을 수송 중인 국군 노무대

1950 국가기록원

 

 

 

 

 

 

북한군에 의해 한강 이북으로 끌려가는 유엔군 포로

1950 국가기록원

 

 

 

 

 

 

중앙청에서 열린 서울 수복 기념식

1950. 9. NARA

 

 

 

 

 

 

 

 

 

북한군 대상 삐라

북한군을 대상으로 제작된 심리전 전단이다. 유엔군이 제작한 것으로 인천상륙작전 이후 서울 탈환을 알리고 있다. 38선 이남에 남아있는 북한군의 불안한 심리를 파고드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1950. 9.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하는 맥아더

1950. 9. 15. 국가기록원

 

 

 

 

 

 

국경선을 넘어 한반도로 들어오는 중국군

1950. 11. 국가기록원

 

 

 

 

 

 

 

 

 

중공군 군용가방

중국군이 사용한 가방으로 미국에 대항해 조선 (북한)을 돕는다는 뜻의 "항미원조 (抗美援朝)" 문구가 적혀있다.

 

1950년대

 

 

 

 

 

 

 

 

 

6 · 25전쟁을 보도한 1950년 8월 28일자 해외 잡지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의 사진이 표지에 실렸다.

 

1950. 8. 28.

 

 

 

 

 

 

국군 평양입성 환영대회

1950. 10. 국가기록원

 

 

 

 

 

 

압록강에 도달한 국군 병사가 수통에 강물을 담는 모습

1950. 10. 국가기록원

 

 

 

 

 

 

흥남철수 당시 사다리에 매달려 수송선에 올라타는 피난민

1950. 12.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1 · 4후퇴 당시 피난민 대열

1951. 1.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석종섭 소령 진중일지

석종섭 소령이 1951년 1 · 4후퇴 이후 서울을 재수복했을 당시 상황을 기록한 일기이다. 사진은 서울 재수복시 인공기를 하강하는 모습이다.

 

1951.

 

 

 

3월 13일

(···) 금일도 인민군의 포탄이 강을 건너 아군 진지에 상당한 수가 낙착했다!

이것은 매일 같이 있는 일이라고는 하나 자못 기분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금일은 어제처럼 강변 둑에 설치된 제2중대의 방위 진지를 순찰했다!

견고하게도 쌓아 붙인 진지는 철벽과도 같았다! 이따금 둑에는 허수아비를 만들어 세운 곳도 많았다.!

온갖 계획이 가일층 복잡해지는 이 때 한강도하작전을 내일에 실현시킬 것을 꿈꾸는 나는 자못 바쁜 날들이다.

 

 

 

 

 

 

 

 

 

 

 

 

상의 중인 미군과 필리핀 지휘관

1951. 9. |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영국군 부상병에 수혈하는 노르웨이군 의무사관

1951. 8. |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38선 돌파 준비를 하는 영국군과 호주군

1950. 10. |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유엔군

유엔은 창설 이후 최초로 6 · 25전쟁에서 유엔군을 결성하였다. 미국 등 16개국의 전투부대와 6개국의 의료지원, 39개국의 물자 및 재정지원이 있었다. 유엔군은 국제평화와 안전유지를 위한 유엔 최초의 집단 안전보장 조치였다.

구분 참전국 참전연인원 구분 참전국 참전연인원
참전국 미국 1,789,000 참전국 남아프리카공화국 826
영국 56,000 벨기에 3,498
호주 17,164 룩셈부르크 100
네덜란드 5,322 콜롬비아 5,100
캐나다 26,791 에티오피아 3,518
뉴질랜드 3,794 의료지원
및 시설
파견국
스웨덴
프랑스 3,421 인도
필리핀 7,420 덴마크
터키 21,212 노르웨이
태국 6,326 이탈리아
그리스 4,992 서독

 

 

 

 

 

 

작전을 상의하는 뉴질랜드 포병대원

1950년대 | NARA

 

 

 

도하 중인 미군 전차

1950. 9. | NARA

 

 

 

한국에 파견될 태국군 부대가 방콕 기차역으로 행진하는 모습

1950. 10. |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전투에 앞서 전차를 점검하는 영국 기갑부대원

1950. 12. | NARA

 

 

 

 

 

 

한국에 상륙한 에티오피아, 네덜란드, 그리스 장병들

1951. 5. |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철원 북부에서 초계근무 준비 중인 캐나다군 병사

1951. 6. |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한국 아이들에게 유엔군 국기에 대해 설명하는 미군 대위

1951. 11. |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경계 임무를 수행 중인 콜롬비아군 병사

1951. 9. |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중국군 진지를 공격하는 튀르키예군

1951. 7. |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전선에서 고국의 신문을 읽는 그리스군 병사

1952. 11. |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공격 지점을 상의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공군 조종사

1951. 4. | NARA

 

 

 

프랑스군 부대를 방문한 맥아더

1952. 3. |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UN군 환영사

국회의장 신익희의 유엔군을 환영하는 영문 환영사이다. 필리핀의 용감한 군인은 다른 유엔군과 함께 우리를 돕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1952. 1. 18.

 

 

 

 

 

 

튀르키예군 포스터

1951년 1월 금양장리 (현 용인 김량장)에서 벌어진 전투를 묘사한 포스터이다. 이 전투에서 튀르키예군은 중국군에게 아군 사상자의 열 배 이상의 피해를 입히는 전과를 올렸다. 튀르키예는 유엔군 중 네번째로 많은 14,936명을 파병하였다.

 

1951.                                                                                                                                                  네즈메띤 외즈첼릭 기증

 

 

 

 

 

 

6 · 25전쟁 참전국 기념우표

6 · 25전쟁 참전국들을 기념하여 제작한 우표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캐나다 등은 참전 당시 국기 도안으로 표시되어 있다.

 

1951.

 

 

 

 

 

 

 

 

 

6 · 25전쟁 참전 유엔군 서명 태극기

6 · 25전쟁에 참전한 미 공군 Dickerson이 유엔군의 사인을 받은 태극기이다. 사인과 함께 이름, 소속, 출신지역 등을 확인할 수 있으며, 강릉, 진해, 대구 등지에 있던 비행단이 "Kㅡ18 Kandnun", "Kㅡ10 (Chin Hai)", "Taegu" 등으로 적혀 있다.

 

1950년대

 

 

 

 

 

 

유엔 6 · 25전쟁 기념 메달

6 · 25전쟁 참전 미국 장병들에게 수여된 메달이다.

 

195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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