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장마 내 머리칼에 젖은 비 어깨에서 허리께로 줄달음치는 비 맥없이 늘어진 손바닥에도 억수로 비가 내리지 않느냐, 비여 나를 사랑해 다오. 저녁이라 하긴 어둠 이슥한 심야 (深夜)라 하긴 무슨 빛 감도는 이 한밤의 골목 어귀를 온몸에 비를 맞으며 내가 가지 않느냐, 비여 나를 용서해 다오. ㅡ 천상병 (1930 ~ 1993) 천상병 시인이 서른 살이던 1961년에 발표한 시. 어이하여 그처럼 젊은 나이에 용서를 알게 되었나. 그의 인생 역정을 내가 다 알까마는, 내려치는 비를 우산도 없이 맞으며 ‘용서’ 를 빌 만큼 시인이 부모나 가족, 친구들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을까. 가난이 죄였겠지. 우리 몸의 아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어떤 시는 우리를 치유하고, 순진무구한 어떤 시는 종교의 경지에 이르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