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詩, 좋은 글 ... 99

[봄은 고양이로다]

[봄은 고양이로다] 봄은 고양이로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香氣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生氣 (생기)가 뛰놀아라. ㅡ 이장희 (1900 ~ 1929) 봄의 향기를 고양이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 시, 1920년대에도 이장희처럼 이미지로만 시를 쓴 시인이 있었다. 이 시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는 '호동그란'이다. 호기심 많고 동그란 고양이의 눈이 금방 떠오르지 않나. 100여 년 전 이토록감각적이고 현대적인 시를 쓴 시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장희의 출생 연도 '1900년' 옆에 붙은 '고종 37'을 보니 그가 ..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 일러스트 = 양진경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 김영랑 (1903 ~ 1950) (현대 표준어에 맞춰 수정함) 봄이 저만치 와 있다. 우리말로 쓰인 봄 노래 중에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처럼 보드라운 시가 또 있을까. '북에는 소월, 남에는 영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김영랑은 순수한 우리말을 살려 시를 짓는 데 뛰어난 시인이었다. '살포시' '보드레한'을 음미하노라면 마음이 밝아진다. 두 연의 1행과 2행이 '같이'로 끝나고 4행과 8행..

[이단 (李端)과의 이별]

[이단 (李端)과의 이별] / 일러스트 = 양진경 이단 (李端)과의 이별 고향 땅 여기저기 시든 풀잎이 뒤덮을 때 친구와의 헤어짐은 더없이 쓸쓸하였네 떠나는 길은 차가운 구름 너머로 이어지고 돌아올 땐 하필 저녁 눈이 흩날렸었지 어려서 부모 잃고 타향을 떠도는 신세 난리 통 겪는 중 우리 알게 됨이 너무 늦었네. 돌아보니 친구는 없고 애써 눈물을 감추니 이 풍진 세상 다시 만날 날은 언제일까 - 노윤 (盧綸 · 739 ~ 799년) ※ 류인 옮김, 원시 번역시와 다르게 행을 배치함 난리 통에 알게 된 친구는 얼마나 애틋할까. 이단과의 이별을 슬퍼하는 노윤의 시에 등장하는 난리는 중국 당나라를 뒤흔든 안녹산 (安祿山)과 사사명의 반란 (755 ~ 763년)을 뜻한다. 당대의 시인 두보 (杜甫)나 노윤의 시..

[맴돌다]

[맴돌다] 맴돌다 피그미 카멜레온은 죽을 때까지 평생 색깔을 바꾸려고 1제곱미터 안을 맴돌고 사하라 사막개미는 죽을 때까지 평생 먹이를 찾으려고 집에서 2밴 미터 안을 맴돈다 나는 죽을 때까지 평생 시를 찾으려고 몇 세제곱미터 안을 맴돌아야 하나 ㅡ 천양희 (1942 ~) 삶의 허무니 어쩌니 길게 말해 무엇하리. "너는 평생 몇 세제곱미터 안을 맴돌았니?"라고 물어보면 게임이 끝난다. 네가 아무리 잘난 척해도, 네 아무리 별볼일 없는 사람이라도 우리는 모두 맴돌다 가는 인생. 직업에 매인 사람이라면, 직장에 구속되지 않은 사람이라도 누구나 공감할 멋진 시. 피그미 카멜레온, 사하라 사막개미 그리고 인간, 서로 다른 동물들이 색깔과 먹이와 시를 찾아 각각 1제곱미터, 2백 미터, 몇 세제곱미터 안을 맴돌다..

[겨울 길을 간다]

[겨울 길을 간다] / 일러스트 = 김성규 겨울 길을 간다 겨울 길을 간다 봄 여름 데리고 호화롭던 숲 가을과 함께 서서히 옷을 벗으면 텅 빈 해질녘에 겨울이 오는 소리 문득 창을 열면 흰 눈 덮인 오솔길 (···) 먼 길에 목마른 가난의 행복 고운 별 하나 가슴에 묻고 겨울 숲길을 간다 ㅡ 이해인 (1945 ~ ) 새해를 맞이하며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을 읽었다. 성직 수녀라는 특수한 신분, 수녀원이라는 특별한 환경에서 잉태된 시들이기에 그의 시를 읽기 전에 어떤 선입견이 있었다. 간절하고 소박한 시구들을 찬찬히 음미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별다른 수식 없이 "겨울 길을 간다"로 시작되어 "봄 여름 데리고 호화롭던 숲"에 이르러 잠깐 쉬고 싶었다. 계절의 변화를 이토록 간단히 절묘하게 표현하다니. 봄날에..

[곡시 (哭詩) : 탄실 김명순을 위한 진혼가]

[곡시 (哭詩) : 탄실 김명순을 위한 진혼가] 양진경 한 여자를 죽이는 일은 간단했다. 유학 중 도쿄에서 고국의 선배를 만나 데이트 중에 짐승으로 돌변한 남자가 강제로 성폭행을 한 그날 이후 여자의 모든 것은 끝이 났다. 출생부터 더러운 피를 가진 여자! (···) 뭇 남자들이 다투어 그녀를 냉소하고 (···) 식민지 문단의 남류들은 죄의식 없이 한 여성을 능멸하고 따돌렸다 (···) 아직도 여자라는 식민지에는 비명과 피눈물 멈추지 않는다 (···) ㅡ 문정희 (1947년 ~) (원시와 다르게 행을 배열함) 무거운 내용을 담았으나 활달하고 힘찬 기운이 느껴진다. 문단에서 유폐되기 전에 그이의 천성은 활달하고 밝았다. 김명순을 기리는 '곡시 哭詩'를 쓴 문정희 선생도 활달하며 여성 문제에 대해 자신의 목..

기업가(起業家)의 신조(信條) Entrepreneur’s Credo

기업가(起業家)의 신조(信條) Entrepreneur’s Credo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나는 평범한 인간의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할 수만 있다면, 평범한 인간이 되지 않는 것은 나의 권리다. 나는 안정이 아닌 기회를 추구한다. 국가가 나의 안위를 보장하는 대가로 초라해지거나 총명함을 잃은, 그렇게 사회의 보호를 받는 시민이 되기를 나는 희망하지 않는다. 나는 계산된 위험을 감내하고, 꿈을 꾸고, 일으켜 세우며, 실패하고, 또 성공하기를 바란다. 나는 수동적으로 무언가를 얻기 위해 능동적으로 얻을 무언가를 내어놓지 않을 것이다. 나는 최대한의 수준까지, 인생에서 주어지는 도전들을 선호하며, 유토피아라는 평화로운 상태를 이뤄가며 느끼게 될 성취의 전율들을 선호한다. 나는 조금의 편익을 위..

詩, 좋은 글 ... 2022.03.05

해탈시(인생)

해탈시(인생) 서산대사 근심 걱정 없는 사람 누군고 출세하기 싫은 사람 누군고 시기 질투 없는 사람 누군고 흉 허물 없는 사람 어디 있겠소. 가난하다 서러워 말고 장애를 가졌다 기죽지 말고 못 배웠다 주눅들지 마소 세상살이 다 거기서 거기외다. 가진 것 많다 유세 떨지 말고 건강하다 큰소리 치지 말고 명예 얻었다 목에 힘주지 마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더이다. 잠시 잠깐 다니러 온 이 세상 있고 없음을 편가르지 말고 잘나고 못남을 평가하지 말고 얼기설기 어우러져 살다 나 가세! 다 바람 같은 거라오. 뭘 그렇게 고민하오. 만남의 기쁨이건 이별의 슬픔이건 다 한 순간이오. 사랑이 아무리 깊어도 산들바람이고 오해가 아무리 커도 비바람 이라오. 외로움이 아무리 지독해도 눈보라 일 뿐이오 폭풍이 아무리 세도 지..

詩, 좋은 글 ... 2021.12.08

어머니

어머니 비양섬 파도 속에 울려 오는 숨비소리* 외아들 살리려고 목숨걸고 가재털고 자나 깨나 노심초사 두손 모아 성공기원 87세에 미소지으며 떠나가신 어머니 괴로움도 나이 듦도 모두 잊어버리고 비가 오나 바람 부나 손발이 터지도록 황무지에 한림공원 개척하는 아들 도와 기어코 성공시키신 장하신 어머니 제 가슴 깊이 새겨진 가없는 그 자혜 기리며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그립고 또 그리워 하염없이 불러 봐도 이제는 대답이 없으신 사랑하는 어머니 금비녀 옥반지 하나조차도 드릴 길이 없어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손자손녀들과 함께 이 추모비를 만들어 어머니께 바칩니다. 한림공원 창업주 재암 송봉규 지음 * 숨비소리 : '숨비소리'는 좀녀(해녀)들이 물질할때 깊은 바닷속에서 해산물을 캐다가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물밖으..

詩, 좋은 글 ... 2021.12.01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