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동맹 70년, 번영을 위한 동행

[<5> 미군한테서 영어 배우다가 이젠 한국어 가르치는 시대]

드무2 2023. 12. 28.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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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미군한테서 영어 배우다가 이젠 한국어 가르치는 시대]

 

 

 

주한 미군 장병과 그 가족 등 16명이 지난 22일 경기 평택시 평택대에서 한국어 수업을 듣고 있다. 사진은 배서현 평택대 국제교육원장이 주한 미군 장병에게 한국어로 이름 쓰는 법을 가르쳐 주는 모습. / 조재현 기자

 

 

 

한국서 복무하다 그 매력에 빠져··· 동맹국 언어 '열공'

 

 

 

미 8군 군무원 필립스씨

"현역일 땐 한국어 배울 시간 없어

두차례 복무 마치고 다시 한국에"

 

지리정보 분석병 로크 상병

"입대 전에도 양념갈비 · 김밥 즐겨

룸메이트와 한국어로 말하고 싶어"

 

평택대, 18년째 한국어 수업 진행

미군 · 군무원 등 1만7000명 참가

 

 

 

“88 올림픽 때 용산에서 복무하면서 만난 한국인들 덕분에 한국어의 매력에 푹 빠졌어요. 무엇보다 그 발음이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미 8군 군무원 켈리 필립스 (63)씨는 서울 올림픽이 열린 1988년, 서울 용산의 미 8군 121병원에서 중위로 복무했다. 우연히 배치받은 한국이었지만, 사람들이 보여준 친절함과 품위가 잊히지 않았다고 한다. 군 생활 마감 직전이었던 2013년 중령으로 한국을 또다시 찾았고, 2015년 한국에서 군 생활을 마쳤다. 그는 “세 자녀 모두 한국에서 자랐는데, 그중 한 명은 이곳에서 영어 선생님이 됐다”고 했다. 영어 선생님이 된 필립스씨의 딸은 “한국이 너무 아름다워서 계속 머물며 평생 직장을 구하고 싶다” 고 말한다고 한다.

지난 22일 경기도 평택대 한국어 수업에서 만난 필립스씨는 “나는 군인입니다” 라는 한국어를 수차례 소리 내 읽으며 익히고 있었다. 그는 “현역일 때는 배울 시간이 없었지만, 한국을 알면 알수록 더 한국어를 알고 싶었다” 며 “특히 군무원이 된 이후 동료 중 한국인이 무척 많아 다양한 한국어 표현을 물어보면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고 했다. 그는 이날 한국어와 한국 역사 · 문화를 배우는 ‘헤드스타트 프로그램 (Head Start Program)’ 강의를 들었다. 지난 2006년부터 18년째 진행 중인 이 프로그램을 거쳐 간 미군 · 군무원만 1만7400여 명이라고 한다.

이날 한국어 수업을 진행한 배서현 (55) 교수는 칠판에 한국어 자음과 모음을 적고 ‘아이’ ‘고기’ 같은 단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원리를 설명했다. 배 교수는 “K팝 등 한류 덕분인지 프로그램을 시작한 10여 년 전보다 주한 미군 장병들이 한국에 갖는 관심이 더욱 커졌다” 며 “한국에 오는 유학생들과 달리 한국어를 꼭 배우지 않아도 되는 이들이지만 버거워도 배우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더 열심히 한국어를 전파해야겠다고 느낀다” 고 했다. 그는 “올해 한미 동맹 70주년을 맞아 수업도 더 체계적으로 준비했다” 며 “한국어 수업이 한미 양국 동맹에 도움 되는 디딤돌이 될 거라고 본다” 고 했다.

 

 

 

22일 경기 평택시 평택대에서 한국어 강사 이명진씨가 주한 미군 장병들에게 한국어 강의를 하는 모습. / 조재현 기자

 

 

 

작년 11월부터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 지리 정보 분석병으로 복무 중인 조넬 로크 (32) 상병은 입대 전부터 한국 음식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양념 갈비와 김밥 같은 한국 음식을 즐겼다. ‘떡볶이’ ‘순대’ 등 몇몇 단어는 스스로 익혔지만, 한국어를 더 잘하고 싶었던 마음에 한국어 공부도 시작했다. 그는 “영어와 전혀 다르게 생긴 자음과 모음이 낯설지만, 어떻게 읽는지 알고 싶어진 외국어는 처음이었다” 며 “이제 막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열심히 복습해 룸메이트와 하루 종일 한국어로 대화해 보고 싶다” 고 했다. 그의 룸메이트는 한국계 미국인이라고 한다.

캠프 험프리스의 한 항공 대대에 복무하는 호수에 소브라도 (30) 병장은 한국에 배치받은 지 채 한 달이 안 됐다. 하지만 한국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OTT)로 먼저 접했다. 한국어 드라마에 푹 빠진 그는 복무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부대 밖 외출을 할 때 한국어만 사용하는 게 목표다. 그는 “그동안은 부대 식당을 가면 주인이 직접 주문을 받는 곳 앞에선 발길을 돌렸다” 며 “이제는 한국어로 음식을 시켜보겠다” 고 했다.

이날 한국어 수업에는 16명의 미군과 그 가족, 군무원이 참가했다. 남편이 군무원인 아리랏 카터 (48)씨는 “미국에서도 드라마나 K팝 때문에 한국이 익숙했다” 며 “한국어를 배우는 건 정말 재밌지만, 존댓말은 너무 어렵다” 고 웃었다.

 

 

평택 = 조재현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23년 9월 28일 자]

 

 

 

“부모가 돼준 미군··· 그들의 아들 · 손자는 내가 돕는다”

 

 

 

주한미군 1000명에 한국어 수업

이청자 메릴랜드大 객원 부교수

 

 

 

이청자 (오른쪽)가 한국어 수업 수강생인 주한 미군 앤서니 콜린스 대위와 함께 환히 웃고 있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어깨너머 영어 배워 교수까지

"고아원 앞에 미군부대 캠프 페이지

미군들이 안아주고 노래도 불러줘

그들 덕에 마음이 굶주리지 않아

美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 없을 것"

 

 

 

‘6 · 25전쟁이 터졌을 때 고아원에서 살고 있어서, 거기서 미군들을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노 (老)교수는 매일 아침 이런 기도를 한다고 했다. 북한에서 쫓겨 온 소녀는 미군 부대 앞 고아원에서 어깨너머로 영어를 배웠다. 그러다 전국의 미군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수로 자랐다. 한미 동맹의 역사인 이청자 (82) 메릴랜드대 글로벌 캠퍼스 (UMGC) 객원 부교수를 지난 25일 강원도 원주 자택에서 만났다.

“그때 미군들은 내 곁에 있어주고, 안아주고, 노래 불러주고··· 부모와 마찬가지였어요.” 이제 ‘은혜를 갚는 자식의 마음’ 으로, 31년째 전국의 미군 기지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이 교수는 1941년 평안북도 강계에서 태어났다. 광복 후 가족과 함께 남하해 충북 제천에 정착했는데 얼마 안 가 6 · 25가 터졌다. 이북에서 지주였던 아버지는 끌려가서 총살당했다. 어머니는 피란길에 헤어졌다. 두 살 터울 남동생과 강원도 춘천의 고아원에 닿았다. 아홉 살이었다. 고아원 맞은편에 미군 부대 ‘캠프 페이지’ 가 있었다. 미군들은 그가 있던 애민보육원을 ‘아멘 (Amen)’ 보육원이라면서 정기적으로 찾아왔다. 이 교수는 “천운이었다” 고 했다.

 

 

 

이청자 (82) 메릴랜드대 글로벌캠퍼스 (UMGC) 교수가 지난 4월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 교육동 강의실에서 주한 미군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환히 웃고 있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미군들은 소녀의 세례명 “엘리자벳” 을 부르며 초콜릿을 주고 “감사하다고 말해 보라 (Say Thank you)” 고 했다. “커다란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한국이 어디 있는지, 미국이 어디 있는지 가르쳐줬어요. 고아원 담장 안이 전부였던 저에게 더 넓은 세상을 알려준 거죠. 그들 덕에 마음이 굶주리지 않았어요.”

열일곱에 보육원을 나와 일을 하다 결혼 후 아들을 낳고, 강원 원주에서 조그만 문구사를 열었다. 마흔둘에 중학교 검정고시를 봤다. 고교 검정고시도 통과했다. 이후 상지대학 병설 전문대학 관광영어통역과, 상명여대 영문과를 거쳐 상지대에서 영어교육 석사를 땄다. 당시 우연히 만난 한 미군 장교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아버지 앨범 속에 고아원 아이들 사진이 한가득이었다. 아버지 소속은 춘천 캠프 페이지였다” 라고 말했다. 그때 다짐했다. “나를 살렸던 그 군인들의 아들과 손자들이 한국에 왔구나. 이제는 내가 도와야겠다.” 마침 원주의 ‘캠프 롱’ 에 있던 수녀님이 “한국어를 참 잘 가르친다. UMGC에 한국어 강사로 이력서를 내보라” 고 권유했다. 그렇게 1992년부터 지금까지 1000명 이상의 주한 미군들이 이 교수의 한국어 강의를 들었다. 현재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 에서 주 2회 한국어 수업을 한다. 20여 년 동안 한국 주부들을 상대로도 틈틈이 영어 교육 봉사를 했고 그중 수백 명이 대학에 진학했다고 했다.

“지금의 저는 미국이 아니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어요. 한국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미국이 아무것도 없는 가난하고 위험한 나라에 와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가 지금 선진국 대열에 올라 당당히 세계와 경쟁할 수 있었을까요. 한국과 미국은 ‘영원히 함께 가야 할 파트너’ 입니다.”

 

 

원주 = 김지원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23년 9월 28일 자]

 

 

 

주한 미군 하사가 “니, 내 누군지 아니”

 

 

 

한국어 대회서 실력 뽐내

 

 

 

에르셀 나리오 하사

 

 

 

지난 26일 평택 캠프 험프리스 기지에서는 주한미8군한국군지원단 주최로 주한미군 장병들의 한국어 말하기 대회가 열렸다. 올해로 23회째를 맞은 이 대회에서는 예선에 참가한 장병 80명 중 미군 8명이 결선에 진출했다. 미군 장병들은 올해로 70년을 맞은 한미동맹의 공고함을 소개하거나, 한국 영화 속 대사를 따라 하며 한국어 실력을 뽐냈다.

이날 대회에서 1위를 한 에르셀 나리오 (34) 하사는 영화 ‘범죄도시’ 의 대사를 발표 중간에 넣었다. 그가 영화 속 조선족 말투로 “니, 내 누군지 아니” 라고 하자 관중이 손뼉을 쳤다. 그는 “기쁠 때는 ‘내가 밥 살게’, 아플 때는 ‘밥 잘 챙겨 먹어’, 힘들 때는 ‘먹고살기 힘들지?’ 라고 할 만큼 한국인은 밥에 진심인 것 같다” 며 “한국 음식과 한국어를 모두 좋아하게 된 인연으로 한국인 여자 친구도 생겼다” 고 했다.

‘비빔밥과 한미동맹’ 을 주제로 발표한 네이든 멈퍼드 (25) 대위는 2위를 차지했다. 그는 행사장에 내걸린 태극기와 성조기를 가리키며 “이곳에는 두 개의 국기가 휘날리고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하나” 라며 “마치 비빔밥 속 다양한 재료의 식감이 새로운 하나의 맛으로 합쳐지듯, 한미 장병들도 서로 다른 지역에서 왔지만 서로 화합할 수 있을 것” 이라고 했다. 그는 당초 예정된 2024년보다 1년 더 한국 복무를 연장하고 싶다며 트로트 ‘무조건’ 을 불렀다. 그는 “사령관님, 제 연장 신청을 승인해 주십시오! 한미동맹을 위해 무조건 달려가겠습니다” 라고 했다.

3등을 차지한 에번 플로레스 (29) 대위는 아프가니스탄에 파병을 갔던 2019년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을 보면서 한국어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플로레스 대위는 “한국에 오고 나서는 대구 사투리와 표준어의 차이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워 한국어를 실생활에서 쓰는 묘미를 깨달았다” 고 했다.

 

 

평택 = 조재현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23년 9월 28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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