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부산광역시

[부산여행 ㅡ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01)]

드무2 2022. 10. 2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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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 ㅡ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01)] 

 

 

 

부산으로 출발하기 전 서울역에서

 

 

 

현천회 2박 3일 추억의 부산여행

 

참석인원 : 총 31명(제주 26명, 재경 5명)

 

일정표(제주 기준)

날짜 항공 시간 일정 비고
첫날
10월 21일
금요일
대한항공

예약번호
7697-7778
07 : 40~
08 : 45~
10 : 40~
11 : 00~12 : 00
12 : 20~13 : 30
오후




제주공항 집결(약국)
제주국제공항 출발
부산역 재경동창 합류
용두산공원(전망대)
중식(자갈치시장)
자갈치시장, 비프광장
국제시장
깡통시장
송도해수욕장, 송도케이블카
숙소, 저녁
갈매기투어
45인승
손수열 기사님
010-9312-3820




송도모아호텔
051)243-9360
(2인 1실)
둘째날
10월 22일
토요일
  08 : 00~09 : 00
오전
  

오후


조식
감천문화마을
영도 태종대, 영도 흰여울문화마을
영도 국립해양박물관
오륙도, 요트투어
숙소, 저녁
광안리
썬씨티호텔
050)751-7171
(3인 1실)
셋째날
10월 23일
일요일
대한항공 08 : 00~09 : 00
오전

오후




19 : 15~
조식
동백섬 산책로, 누리마루 APEC하우스
해운대 해수욕장
해운대 블루라인해변열차, 해동용궁사
중식
을숙도

김해공항 출발



중식
복지리


제주공항
20 : 10 도착

세부일정은 의견을 수렴하여 탄력적으로 운영하겠습니다.

 

 

● 용두산공원 : 시내 중심지 광복동 위치, 부산타워, 이순신장군 동상

                        부산시가지를 조망, 6 · 25때는 주변이 피난민촌 형성

 

● 자갈치시장 : 남포동과 충무동에 있는 대형 수산물시장, 480개 점포 주변에 신동아수산물시장, 건어물시장 등 우리나라의 최대의 어시장

 

● 국제시장 : 광복이 되자 일본인들이 철수, 한국전쟁시 피난민들이 장사를 하며 활기, 미군의 군용물자와 부산항으로 밀수입된 온갖 상품들이 이곳을 통해 전국적으로 공급

 

● 부평깡통시장 : 국제시장 주변의 떡볶이 등 먹거리 식당, 국내 최초 야시장

 

● 비프광장 : 부산국제영화제 전야제 개최, 길바닥에 유명배우들 손도장 족장, 주변은 포장마차 등 먹거리 거리

 

● 송도해수욕장, 케이블카 : 1913년 부산서 제일 먼저 해수욕장 개장, 주변 구름산책로인 스카이워크, 송림공원서 안남공원까지 1.62㎞ 케이블카 타고 주변경관 감상.

 

● 감천문화마을 : 한국전쟁시 산자락에 피난민 집성촌, 한국의 마추피추, 산토리라는 별명.

 

● 영도 태종대 : 영도의 끝자락, 울창한 숲, 기암괴석, 해식절벽, 낚시터, 산책로, 다누비 열차타고 한바퀴 주변 감상.

 

● 영도 흰여울문화마을 : 피난민들의 애잔한 삶, 낡은 가옥 리모델링 하여 독창적인 문화예술마을로 재탄생, 영화 변호인, 범죄와 전쟁 등 다수 영화 촬영지.

 

● 동백섬, APEC누리마루하우스, 갈맷길 산책로, 2015년 태평양 21개국 정상들이 모여 정상회의, 만찬장소.

 

● 행동용궁사 : 동해바다를 낀 한국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

 

● 해운대 블루라인파크 해변열차 : 해운대 미포 ㅡ 청사포 ㅡ 송정 4.8㎞, 동해남부선 옛 철도를 친환경으로 재개발 운행하고 있음.

 

재경은 KTX 열차 015(서울역 08시 출발 부산 10시 45분 도착) 타고 부산으로 이동

 

 

 

서울역에서 바라본 남산 방향

 

 

 

서울역 KTX 타는 곳

 

 

 

걸어오는 친구 성기

 

 

 

6번 타는 곳

 

 

 

타는곳에서 전화 통화중인 성기

 

 

 

무궁화호

 

 

 

종훈이가 준비한 차내식과 성기가 준비한 귤 2개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

 

서울역 출발

 

 

 

 

 

 

 

 

용산역 진입

 

 

 

 

용산역 통과

 

 

 

 

한강철교를 지나고

 

 

 

 

 

 

 

 

 

 

 

 

곧 광명역에 도착하겠습니다.

 

 

 

 

광명역 도착

 

 

 

 

광명역 출발

 

 

 

 

저수지도 지나고

 

 

 

 

 

 

 

 

 

 

 

 

 

 

 

 

안개가 자욱한 구간도 지나고

 

 

 

 

 

 

 

 

강과 추수가 끝난 들판도 지나고

 

 

 

 

 

 

 

 

 

 

 

 

 

 

 

 

천안아산역 도착

 

 

 

 

천안아산역 출발

 

 

 

 

 

 

 

 

대전역 도착

 

 

 

 

대전역 출발

 

 

 

 

 

 

 

 

김천구미역 도착

 

 

 

 

 

 

 

 

 

 

 

 

 

 

 

 

 

 

 

 

 

 

 

신경주역

 

 

 

 

신경주역 출발

 

 

 

 

울산(통도사)역 도착

 

 

 

 

울산(통도사)역 출발

 

 

 

 

부산역 도착

 

 

 

부산역 앞 광장

 

 

 

갈맷길 코스 안내도

 

 

 

부산역

 

 

 

 

 

 

우리가 탈 오렌지 버스 ㅡ 부산 70 바 8159

 

 

 

버스 내부

 

 

 

용두산공원

용두산공원 부산면세점과 부산타워

 

 

 

용 동상 ㅡ 부산탑 찬가

 

 

 

부산탑 찬가

 

여기는 이 나라의 관문

국토의 정기가 서려 맺힌 곳

백두산 힘차게 뻗어 내린 금정산맥

앞바다 푸른 물결 태평양 맞물렸네

 

첨성대처럼 곧게곧게 치솟은 탑 위에

높이 올라 저 멀리 바라보라

 

통일과 번영과 자유와 평화의 큰 길이

영롱한 햇빛 아래 눈이 부시고

그리로 밀물보다 더 거세게 달려가는

이 땅 겨레의 의기에 찬 모습

 

우리는 무궁화 피는 나라의 국민

조국과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의 키가

여기 세운 이 탑보다 오히려 높다

 

울분이 파도같이 벅차오르던

어제의 피 묻은 온갖 기억들

역사의 가시밭 고갯길 허위적거리며

고난을 참고 넘는 오늘의 행진

 

그러나 우리는 어제와 오늘보다

차라리 다가오는 내일의 삶을 위해

가슴마다 의욕의 밑바닥에 불을 붙인다.

 

그리고 오색 진주알보다 더 찬란하고

왕관보다도 더 고귀한 땀 속에서

인간의 즐거운 보람을 발견하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 속에서

지구 위의 모든 민족과 민족을 위해

평화의 참뜻을 새겨 본다

 

一九七三년    월    일

노산 이은상 시

일중 김충현 씀

 

 

 

버스의 옆 모습 ㅡ ORANGE BUS EXPRESS TOUR

 

 

 

부산시민의 종

 

 

 

이순신 장군 동상과 부산타워

 

 

 

 

 

 

 

 

 

단풍이 아름답다

 

 

 

그 뜻을 돌에 새겨

 

여기는 中岳

예로부터 부산의 鎮山이다

이 거룩한 吉地에

四百萬의 정성을 모아

釜山市民의 종을 安置한다

 

이제

開港의 關門에서

二十一世紀를 향하여

부산의 번영과 발전

시민의 단결과 자유

그것을 상징하여 종은 울린다

종아 울려라

더 크게

더 높게

더 멀리

울려라

 

 

 

이 종은 부산 시민의 헌금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1997年 1月 1日

釜山廣域市長 文  正  秀

 

 

 

 

 

 

부산시민의 종

이 종(鐘)은 부산시민의 마음과 정성이 담긴 종으로써 부산시의 발전과 번영을 염원하며 시민의 화합과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부산시민 100,723명이 기부한 1,282백만원의 시민헌수금으로 1996년 12월 31일에 건립된 종으로, 조승래 교수(부산대 예술대학)의 수정된 디자인을 당선작으로 최종 확정하고 기장(機長)의 주종회사인 홍종사에서 주조하였다. 종의 재질은 구리, 주석이고 규격은 전체 높이 3.85m, 구경 2.3m, 종무게 25톤으로 용두산 보호각(종각) 안에 두었으며 종각 정면의 현판은 경재(敬齋) 조영조가 쓰고 석정(石丁) 남두석이 조각하였다. 종머리 천판(天板)에는 울림 무늬를 새기고 용뉴와 음통을 두었으며 상대에 물결무늬와 동백꽃잎 12송이를 사이에 배치한 무늬를 두르고 종 아랫부분 종구(鐘口)를 두른 무늬띠는 오륙도와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 갈매기, 동백꽃 등 부산을 상징하는 자연환경을 8괘 모양의 물결로 표현하였다. 4곳의 유곽에 동백꽃 봉오리를 조형화한 유두를 9개씩 배치하였고 당좌는 12꽃잎에 둘러싸인 동백꽃을 새겼으며 당좌 좌우의 비천상을 대금(만파식적(萬波息笛))을 연주하려고 준비하는 모습이다. 타종은 3 · 1절, 광복절, 재야의 종 타종 등 연3회에 걸쳐 타종을 하고 있다.

 

 

 

 

 

 

 

 

 

 

 

 

① 부산탑 및 전망대 ② 팔각정(식음료시설) ③ 편의점 ④ 부산면세점 ⑤ 중앙광장 ⑥ 용탑 ⑦ 백산 안희제 선생 동상 ⑧ 전통담장원 · 한복체험관 ⑨ 충무공동상 ⑩ 꽃시계 ⑪ 종각(부산시민의종) ⑫ 백천폭포 ⑬ 공중화장실 ⑭ 공원관리사무소 ⑮ 에스컬레이터 ⑯ 공영주차장 ⑰ 부산영화체험박물관 ⑱ 동광계단 ⑲ 정수사(사찰) ⑳ 미술의거리

 

 

 

갈맷길 도보인증대

 

 

 

부산광역시 관광안내도

 

 

 

가덕도

 

 

 

백산 안희제 선생 동상

 

 

 

 

 

 

동상건립문

 

새는 한가로움을 좋아해 후미진 골짜기만 찾아드는데 해는 치우침을 싫어해 중천에서 비추인다.

|님이 17세에 지은 시|

 

1885년 8월 4일(음력) 의령군 부림면 입산리에서 태어난 님은 어려서부터 유학을 배워 선비의 서슬 푸른 의리정신을 몸에 익혔다. 1905년 을사조약의 소식을 듣고, 구국의 한마음으로 서울로 올라가 보성전문, 양정의숙에서 경제학을 배웠다. 이때 교남교육회를 만들어 의령을 비롯하여 영남 각지에 학교를 설립, 민족교육의 씨앗을 뿌렸다. 나아가 1909년에는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에 격동된 서른 살 안쪽 청년 80여 명과 함께 비밀결사 대동청년단을 조직하였다. 기어코 나라를 빼앗기자 나라 밖으로 떠나 러시아와 중국을 무대로 민족해방운동을 모색하다가 귀국하여 1914년 가을께 부산에서 백산상회를 창립하고, 장차 백산무역주식회사로 발돋움케 하였다. 이로써 민족자본을 육성하는 한편 국외의 독립군 단체에 군자금을 보냈으며 나라 안팎의 민족해방운동 세력들 사이의 연락 거점 노릇을 하였다. 그리하여 3 · 1운동의 전 민족적 봉기를 준비하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창건을 지원하고 스스로 연통제의 동맥이 되어 그 기관지 《독립신문》의 국내 보급 통로 역할을 하였다. 아울러 기미육영회를 만들어 청년들에게 국외 유학의 길을 터주고, 부산청년회를 만들어 지역사회운동의 터를 닦았다. 1927년에는 민중생활방위, 민중에 의한 산업관리를 목적으로 협동조합 운동에 뛰어들었고, 이를 위해 잡지 《자력》을 발간하였다. 일찍이 동아일보 창간에 참여했던 님은 1929년에 중외일보사를 경영하여 민족언론수호에 진력하였다. 한편, 님은 1927년에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힘을 모아 신간회를 결성하자 이를 지지하고, 영남의 유림 지주들이 영남친목회를 결성하려 하자 그것이 지역감정을 불러 일으켜 신간회로 민족역량을 집중하는 것을 방해한다하여 분쇄하였다.

1931년 일제가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가 첨예한 항일투쟁의 무대가 되자 발해의 옛 수도 동경성으로 들어가 드넓은 땅을 개간하여 발해 농장이라 이름짓고 발해 보통학교를 설립했으며 민족종교인 대종교의 총본사를 이곳으로 옮겨 오게 하였다. 이로써 동포 이주민의 생활을 안정시킴과 함께 항일투쟁의 경제적 기반을 쌓고 민족교육을 베풀고 대종교를 민족정신의 고갱이로 삼아 이곳을 독립운동 근거지로 육성하고자 함이었다. 이렇듯 민족해방의 불씨를 지펴 나가 님은 일제 경찰의 손아귀에 붙들려 아홉달 동안 모진 고문과 옥살이에 시달리다가, "집안 일이든 나라 일이든 오직 자력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유언을 남긴 채 1943년 9월 2일(음력 8월 3일) 쉰 아홉의 나이로 순국하였다.

일제에 맞선 투쟁에서 한 걸음도 비켜 서지 않고 그 한가운데로 나아가 비타협 절대독립의 독립전쟁 노선을 굳게 관철해 나간 님의 의리정신, 민족의 협동단결로 민족해방을 달성하고 민중의 협동단결로 민중경제를 건설해야 한다는 님의 협동정신, 자력을 중심으로 민족자주독립, 민족자립경제 건설을 이룩하고자 하였던 님의 자력정신을 이어받아 올곧은 부산정신, 민족정신으로 뻗어 내리게 하고자 이곳에 님의 흉상을 세운다.

 

 

 

 

 

 

 

 

 

 

 

 

 

해병대사령부

1951. 5. 20

1955. 3. 26

 

 

 

민족사상 최대의 수난인 한국전쟁 기간 중 낙동강전선(부산교두보선)에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대한민국 해병대는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남단 제주기지로부터 용약출전하여 1950년 9월 6일 부산에 도착하였다.

부산에서 인천상륙작전 준비를 완료한 해병대는 동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과 서울탈환작전을 감행하여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함으로써 당시 임시수도 부산의 시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갖게 하였다. 인천상륙작전으로 북진의 활로를 개척한 해병대는 원산에 상륙하여 북진을 개시하였고, 원산, 고성, 함흥지구전투를 수행 중 중공군의 불법 개입으로 부산과 진해로 철수하였다.

해병대가 1 · 4후퇴 시 재반격작전을 수행하는 동안 해병대 사령부는 1951년 5월 20일 부산 용두산공원으로 이동하여 1955년 3월 26일까지 만 4년여 동안 주둔하면서 해병대 후방지휘소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무적해병", "귀신잡는해병대"의 전통을 수립하게 되었다.

해병대 사령부는 부산 용두산에 주둔한 역사를 부산시민과 함께 영원히 기리기 위하여 이곳에 비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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