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시립박물관] ㅡ 유럽자기전시실
유럽자기전시실
European Porcelain Exhibition Hall
유럽자기전시실과 교육전시실의 입구
수석전시실 입구
도자의 역사 History of Porcelain
~2세기
<유럽 Europe>
● 기원전 2,600년경, 그리스 크레타섬
미노아 물레로 만든 항아리
● 기원전 2,600 ~ 1,000년경, 지중해 키프로스
지그재그 마름모무늬토기
<아시아 Asia>
[중국 China]
● 상商, 도토기제작 시작 추정
● 한漢, 도자기 생산
새머리 장식 항아리
7세기
<아시아 Asia>
[한국 Korea]
통일신라
● 회청색 경질 토기
녹유뼈단지
[중국 China]
당唐
● *당삼채 唐三彩
* 삼채유약을 사용한 토기로 소지에 화장한 다음 녹 · 갈 · 황 · 백으로 칠함.
당삼채항아리
14세기
<아시아 Asia>
[한국 Korea]
고려
● 9 ~ 10세기 중국 절강성 월주요 청자기술 전래
● 11 ~ 12세기 고려청자의 전성기
청자삼강모란당초문표형주자
● 13세기 후반 원元 간섭으로 도자기 제작 쇠퇴
[중국 China]
원元
● 청백자
청백자각화연꽃덩쿨무늬 두귀 달린 병
● 청화백자
백자청화송죽매문호
15세기
<유럽 Europe>
● 중국의 차, 비단 등 동방산물 이슬람을 거쳐 유럽으로 전파
● 동서교역로를 통해 중국 도자기 이탈리아 상륙
<아시아 Asia>
[한국 Korea]
조선 전기
● 분청사기 유행 (고려말 14C 후반 ~ 조선전기 16C 중반)
분청사기조화어문병
● 고려백자의 전통을 이어받아 중국 원元 · 명明의 경질백자 영향을 받아 조선백자 제작
● 1467년경 관요가 설치된 후 청화백자 생산
백자청화매화대나무새무늬항아리
[중국 China]
명明
● 경덕진청화백자
백자청화화과문집호
● 오채자기
16세기
<유럽 Europe>
● 권력 과시용 도자기 소비증가
아우구스투스 2세
<아시아 Asia>
[한국 Korea]
조선중기
● 백자 대중화
백자철화포도원숭이무늬항아리
● 16세기 말 ~ 17세기 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요업 침체
● 1630년대 철화백자 생산
[중국 China]
청淸
● 분채, 법랑채, 동홍유계 생산
● 1644 청淸 건국으로 자기생산에 난항
● 1680 경덕진 도자기 재수출
[일본 Japan]
● 도자기 수출 최초 급부상
● 1616 이삼평李參平 덴구다니天狗谷 가마에서 일본 최초 자기 생산(아리타 가키에몽柿右衛門 양식 자기)
가키에몬 양식 호랑이매화무늬 접시
18세기
<유럽 Europe>
● 1709 연금술사 뵈트거 유럽 최초의 자기개발, 독일 마이센 공방 설립
● 1725 마이센 화가 헤롤트, 마이센 청화자기와 채화자기彩畵磁器 개발 성공
● 1731 마이센 조각가 켄들러, 자기인형 제작
● 1743 영국 첼시가마, 자기 생산 시작
● 1747 영국 보우가마, 동판전사방식 개발로 자기 대량 생산 가능
● 1748 영국 보우가마, 토마스 프라이 Thomas Frye 본 차이나 개발
● 1774 프랑스 세브르, 경질자기 생산하는 유럽 최고 자기공장으로 부상
[프랑스] 세브르 평화의 화병
● 1760 영국 웨지우드, 크림웨어 도기 생산
● 1789 영국 우스터, 영국 도자기 최초 '로열' 칭호 부여
<아시아 Asia>
[한국 Korea]
조선후기 · 말기
● 백자 품질 향상
백자달항아리
● 1884 분원 관요가 민영화된 후 수입도자의 영향으로 전통적인 도자수공업 쇠퇴
19세기
<유럽 Europe>
● 1800 유럽 자기공장 고화도 생산라인 구축으로 클래식한 형태의 식기와 화병 생산
● 1855 파리 만국 박람회를 계기로 장식미술 관심 증가
<아시아 Asia>
[중국 China]
● 청淸, 분채자기
오채팔선문병
[일본 Japan]
● 파리 만국 박람회 출품 후 유럽으로의 수출성행
20세기
<유럽 Europe>
● 1900 파리만국박람회에 아르누보 양식 출현
● 도자의 산업화
대항해시대가 가져온 유럽의 도자기 열풍
15세기 후반, 포르투갈을 선두로 스페인,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해양 항로를 개척하고 탐험하며 무역을 활발히 펼친 '대항해시대'가 시작되었다. 유럽의 각 국가는 동인도회사를 설립하고 경쟁적으로 아시아 진출을 모색하였는데, 동남아시아의 향신료를 비롯하여 금, 은 등이 주요 교역 대상품이었다. 동양의 도자기가 유럽으로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것은 1602년 포르투갈 상선에서 얻은 중국 도자기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경매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면서부터 이다. 이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아시아의 무역을 독점하였던 인도네시아 바타비아(자카르타)에 상관商館을 설치하고 막대한 이익을 올릴 수 있는 중국 도자기를 대량으로 수입하였다. 동인도 회사의 기록에 의하면 1604년부터 1657년까지 약 3백만 점의 중국 도자기가 유럽으로 수입되었다.
유럽으로 전파된 '동양에서 온 하얀 금'
대항해시대를 계기로 중국의 자기가 본격적으로 유럽으로 유입되자 왕실과 귀족들은 '동양에서 온 하얀 금'이라 부르며 그 매력에 고취되었다. 17세기 유럽의 동인도 회사들이 본격적으로 아시아 진출을 하면서 도자기가 글로벌 상품으로 도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거래되었던 도자기는 청화자기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이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중국 명나라 채색자기인 *오채자기五彩磁器에 대한 유럽의 수요는 커져 갔다. 그러나 명明과 청淸의 왕조 교체기에 일어난 내란으로 중국 최대의 도자기 산지인 경덕진景德鎭은 피폐해졌으며, 청의 무역제한 실시로 17세기 중엽에는 중국자기의 공급이 끊기게 된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는 새로운 거래처로 일본 큐슈의 히젠肥箭지역에서 생산되는 히젠자기肥箭磁器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임진왜란 때 조선도공에 의해 자기제작에 성공한 히젠의 나베시마 번주蕃主는 중국의 오채자기 기술을 사용한 고이마리古伊萬里양식과 여백의 미를 가진 가케에몽柿右衛門양식으로 중국을 대신하여 유럽시장을 장악하게 된다. 동양에서 온 순백색의 도자기는 유럽 군주들에게 단순한 애호가로서의 수집을 넘어 자기제작에 대한 열망을 품게 하였다. 특히, 독일 작센공화국의 왕인 아우구스투스 2세Friedrich Augustus II (1670 ~ 1733)는 자기磁器 개발에 대한 욕망과 집념으로 연금술사인 뵈트거Johann Friedrich Böttger (1682 ~1719)에게 자기제작을 명하고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하였다. 뵈트거는 순녀 간의 노력 끝에 카오린(고령토)이 자기 생산의 핵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1709년 중국식 자기제조비법을 풀어내 유럽 최초의 백자인 '마이센자기'를 만들었다. 이후 유럽은 본격적인 백색 자기의 시대를 맞이한다.
*오채자기五彩磁器
중국의 채색자기로 상회 안료를 사용해 화려하게 그려진 도자기를 말한다. 일반적인 자기는 1,250℃정도에서 재벌소성을 하면 완성되지만, 오채자기는 재벌소성한 기물의 유리질 표면이 다시 적색, 노란색, 녹색 등의 화려한 저화도 안료로 그림을 그리고, 다음 800℃로 삼벌소성을 한 후에야 비로소 완성된다. 이러한 오채자기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삼회자기 또는 상회기법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유약층을 기준으로 유약의 위쪽에 안료로 그리는 것을 말한다. 이와 반대로 청화자기는 유약층의 아래인 초벌기물에 직접 그린다하여 하회자기 또는 하회기법이라고도 한다. 명明의 만력오채万曆五彩, 청淸의 강희오채康熙五彩, 일본의 가케에몽柿右衛門양식의 자기가 상회기술에 해당한다. 마이센 자기를 비롯한 유럽자기의 시작은 이러한 중국과 일본의 오채자기를 모델로 모방이 시작되었기에 오늘날 유럽자기의 기술과 장식적 미감에 잇어 주요한 근간이라고 할 수 있다.
18세기, 동양의 하얀 금이 문명을 넘어 유럽에 찬란한 백색자기의 시대를 열었다.
독일의 도자기
유럽자기의 선두주자, 독일
중국의 자기가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유럽의 귀족들은 '동양에서 온 하얀 금'이라 부르며 그 신비한 매력에 깊이 빠져 들엇다. 이후 유럽의 많은 도공들이 왕실의 지원 아래 자기를 생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수세기 동안 그 뜻을 이루지 못햇다. 이중에서도 작센의 제후이며 폴란드 왕인 대제 아우구스투스 2세Friedrich Augustus II (1670 ~ 1733)는 자기제작에 대한 열망과 집념이 누구보다도 강했다. 그는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Friedrich William I of Prussia(1688 ~ 1740)에게 병사 600명을 대가로 주고 동양자기 120여 점을 구입할 정도로 자기에 대한 애착이 컸다. 아우구스투스 2세는 1694년 자연과학자인 치린하우스Ehrenfried von Tschirnhaus(1651 ~ 1701)에게 자기 제작연구를 명하고, 1704년부터는 베를린에서 도망 온 연금술사 뵈트거를 자기제작 연구 조수로 임명하여 1709년 마침내 서양 최초의 경질자기 제작에 성공하였다.
자기에 대한 열망이 탄생시킨
마이센
1710년 색소니 행정당국은 "드디어 동양의 자기보다 더 훌륭한 최고의 자기가 만들어졌다."라는 공식문서를 발표하고 그해 1월 아우구스투스 2세는 마이센의 알브레히츠부르크 성에 마이센 왕립 자기제작소 설립을 선포하였다. 이것이 세계 최고의 명품자기 마이센의 시작이다.
18세기 유럽에서 백색자기는 왕실에 부와 권력을 가져다주는 상징이었기 때문에 자기를 만드는 비법은 철저한 보안과 감시 속에 외부로 유출되지 못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마이센에서 도공으로 일하던 사무엘 스톨츠Samuel Stölzel가 비법을 가지고 비엔나로 가면서 자기 만드는 비법과 기술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갈 수 있었다. 마이센은 장식전문가인 헤롤트Gregorius Hoeroldt를 영입해 상회기법上繪技法 안료를 개발하여 자기에 화려한 장식을 할 수 있었다. 1731년에는 주임 성형기술자 켄들러Johann Joachim Kaendler가 부임해 도자 조각품을 제작하였고, 헤롤트의 천재적인 그림장식이 더해져 마이센을 일약 유럽도자산업의 중심지로 부상하게 하였다. 이 시기를 '헤롤트와 켄들러의 시기'(1731 ~ 1763년)라고 부른다.
아우구스투스 2세의 자기에 대한 열망이 탄생시킨 마이센은 장식 전문가와 천재적인 조각가의 만남을 통해 3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가장 빛나는 도자기로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마이센 마크가 있는 접시액자
21C | 독일
마이센 앰블럼의 변천사를 통해 역사를 보여주는 접시액자이다.
마이센 '디너 서비스'
19C | 독일
마이센 '나무 위의 노랑새'
마이센 '나무 위의 그린새'
마이센 '사랑이야기'
연인들이 나무 아래에서 선물을 주고 받으며 애정을 확인하는 아름다운 장면을 묘사한 작품으로 당시 의복양식(독일 꽃문양 의상 등)을 살펴볼 수 있다.
18C 말 | 독일
마이센 '아라비안 나이트'
아라비안 나이트 시리즈 중 '날으는 양탄자'를 모티브로 주인공과 공주의 의상 및 소품을 세밀하게 자기 장식품으로 표현하여 액자로 만든 작품이다.
20C | 독일
마이센 동화이야기
마이센 '꽃촛대'
19C | 독일
마이센 '엄지공주'
안데르센 동화집 '엄지공주'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작품으로 마이센 블루 바탕에 꽃 안의 엄지공주를 표현하였다.
20C | 독일
드레스덴 '데미타스세트'
20C 초 | 독일
마호가니 콘솔
20C | 미국
로열 우스터 '일본풍의 엽전화병'
일본 에도막부시대(도쿠가와 이에야스시대)에 유행한 문양이 그려진 화병이다. 구름 형태의 두 개의 귀, 납작한 형태의 몸통과 줄기문양 밑받침이 있는 기형으로 되어 있다.
19C | 영국
프랑스의 도자기
프랑스 자기 문화의 시작, 파이앙스
독일 마이센에서 최초의 경질자기가 만들어졌으나 제작 비법을 몰랐던 프랑스는 알프스 이북의 파이앙스 도자기 제작방식을 바탕으로 자기 제작에 도전하였다. 파이앙스의 어원은 르네상스 시대 마욜리카Maiolica 도기陶器 생산의 중심지였던 파엔차Faenza라는 지명에서 유래되었다.
파이앙스는 이탈리아 마욜리카 도기의 기법과 양식을 모방한 도기로 16세기 초 파엔차 출신의 도공들이 프랑스, 독일 등으로 진출하면서 유럽 각국으로 급속히 전파되엇고, 17세기 각 지역의 독자적인 미의식이 반영된 작품들이 제작되면서 유럽 전역에 수많은 파이앙스 가마가 생겼다. 대표적인 산지는 프랑스의 루앙, 리옹, 마르세이유와 독일의 베를린, 포츠담, 프랑크푸르트를 비롯해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스위스 취리히 등 유럽 전역에 분포하였다. 파이앙스 도자기는 자기에 비해 소성온도가 낮아 강도가 약하고, 유약 또한 낮은 온도에서 유리질화가 되는 주석을 주성분으로 하였다.
1768년 리모주Limoges 근처에서 자기의 원료인 카오린(고령토)이 발견되어 파이앙스 도자기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후 리모주에 1773년 그렐레Grellet 형제에 의해 설립된 자기공방이 1784년 이후 국가에 매각되면서 왕립자기제작소가 되었다. 이곳에서 생산된 기물器物은 세브르 공방에 보내 프랑스만의 미의식을 담은 세브르의 명품자기로 완성되었다. 리모주는 19세기에 자기 기술의 개량과 공업화로 번영의 토대를 마련하였으며 지금도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자기 산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아함의 극치
세브르
1757년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Louis XV의 애첩이었던 마담 드 퐁파두르Mme. dePompadour(1721 ~ 1764)는 뱅센Vincennes에 있던 자기제작소를 세브르로 옮겨와 프랑스 왕립 세브르 자기제작소를 만들었다.
1769년까지 왕립 세브르 자기제작소에서는 화학자이자 아카데미 장관이었던 장 에로Jean Hellot를 비롯하여 화가, 조각가 등 다방면의 전문가를 초빙해 뛰어난 미감의 연질자기와 유약을 개발하였다. 대표적으로 '국왕의 청색Bleu deroi', '퐁파두르의 로즈Rose Pompadour'라고 불리는 유약으로 세브르 자기만의 바탕색을 만들었다. 이러한 바탕색에 금채金彩로 창문 느낌의 장식 공간을 만들어 그 안에 작은 새나 꽃, 전원 풍경을 그려 넣는 전형적인 로코코풍의 장식은 세브르 자기의 특징이다. 퐁파두르 부인과 마리 앙투아네트Maria Antonia Anna Josepha Joanna(1755 ~ 1793) 등 프랑스 궁정 권력자의 취향과 고급자기 제작을 위한 아낌없는 투자를 바탕으로 세기의 명품들이 탄생하였다.
또한 루이 15세로부터 금채와 상회기법에 대한 독점사용 특권을 부여 받아 화려한 장식예술의 진가를 보여주면서 그 아름다움은 마이센 자기를 압도할 정도였다.
1768년 프랑스 남서부 리모주에서 카오린(고령토)이 발견되어 연질자기에서 경질자기로 제작방식이 바뀌게 되었다. 그러나 1789년 프랑스혁명으로 당시 폭도들의 습격을 받아 제작소는 폐업하고, 이후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국립세브르자기제작소'로 재건하게 된다. 세브르 자기는 프랑스 왕실 예술의 우아함과 화려함, 세련미를 고루 갖춘 유럽자기로 국가의 지원 아래 지금까지도 자기를 생산하는 유일한 곳이다.
세브르 '라퐁텐 이야기 화병'
19C | 프랑스
화병에 담긴 라퐁텐 이야기
프랑스 왕정 시대 문양이 재현된 화병으로 프랑스 문화의 높은 수준을 살펴볼 수 있는 특별한 작품이다. 17세기 프랑스의 시인이자 문학가인 라퐁텐(La Fontaine)의 우화집에서 발췌한 이야기를 원통형 화병에 표현하였다. 세브르만의 독특한 생상과 부분 금도금으로 장식했다.
라퐁텐 우화는 생명력을 불어넣은 동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철학적인 질문들을 던지고 교훈을 전달하는데, 라퐁텐 화병에는 네 가지 우화가 표현되어 있다.
첫 번째는 토끼와 개구리
두 번째는 시골 쥐와 조개
세 번째는 왕을 보내달라고 요구하는 개구리
네 번째는 쥐 두 마리와 여우, 달걀
아기천사와 아가씨
자연주의 화풍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바닷가에서 아가씨와 아기천사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몽환적 배경에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19C | 프랑스
'야생화와 새가 그려진 유리램프'
19C | 프랑스
딜과 게르하르트 '디너 서비스'
1781년에 처음 생산된 후 1829년 문을 닫을 때까지 프랑스 황실에서 가장 사랑받았던 제품으로 직접 손으로 그림을 그려 넣었다. 나폴레옹의 부인인 황후 조세핀이 사랑했던 작품이다.
19C | 프랑스
이삭을 든 여인
추수기에 접어든 계절에 농가의 여인이 이삭을 들고, 석양을 배경으로 서있는 모습을 유리 느낌으로 도자기에 그렸다.
19C | 프랑스
지앤씨 청자 '야생화와 천사 화병'
19C | 프랑스
마호가니 상감장식 콘솔
20C | 미국
세브르 '평화의 화병'
세브르의 특징인 푸른색, 중국 산수화풍의 배경,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와 꽃은 3면에 그려 넣은 세브르의 대표 작품이다. 1873년 세브르 작품 목록에 한 쌍으로 제작되었던 기록이 남아 있다.
19C | 프랑스
자기인형
로코코 시대에는 궁정행사나 연회의 테이블 위를 높이 약 10 ~ 20cm의 작은 설탕인형을 장식하였다. 1730년경 마이센 조각가 켄들러Johann Joachim Kandler가 설탕인형을 대신하여 자기로 만든 것이 자기인형의 시작이다. 이후 자기인형은 유럽 전역에서 신화소재의 군상, 양치기 군상, 수렵 군상, 동물 등 다양한 주제로 제작되었다.
야드로 '백마 위의 소녀'
20C | 스페인
'울타리 앞에 서 있는 숙녀' (우)
20C | 독일
'울타리 앞에 서 있는 신사'
20C | 독일
야드로 '발레리나의 휴식'
20C | 스페인
야드로 '강아지를 안고 있는 여인'
21C | 스페인
야드로 '자유를 향하여'
20C | 스페인
'강아지와 산책하는 남자'
19C | 독일
'강아지와 산책하는 여인'
19C | 독일
영국의 도자기
급성장한 영국의 도자기 산업
영국에서 자기제작은 1743년 개업한 첼시Chelsea가마에서 시작되었다. 규소성분이 50% 이하의 자기토를 사용한 연질자기로 마이센과 세브르 자기에 비해 품질이 낮은 편이었다. 초기 첼시자기는 마이센 자기를 모방하거나 동양풍의 모티브를 주로 사용하였는데 점차 세브르풍의 현란한 장식과 로코코풍의 조형을 가미하여 작품성이 높은 인형이나 장식기물을 제작하게 되었다.
첼시가마와 비슷한 시기에 가동을 시작한 보우Bow가마는 근대 도자산업에 있어 두 가지의 큰 공적을 남겼다. 첫 번째로 유럽 대륙과 달리 영국은 질 좋은 고령토가 산출되지 않아 소뼈를 갈아 만든 연질자기인 본차이나를 개발하였다. 두 번째로 동판전사銅版轉寫 방식을 이용한 대량 생산기술이다.
궁정의 막강한 후원을 배경으로 최고의 명품 자기 제작을 목적으로 한 프랑스의 세브르 자기와 독일의 마이센 자기와는 다르게 영국에서는 이윤을 목적으로 자기 제작소를 운영하였다. 보우가마는 수작업이 필요한 그림장식 인건비가 비싸기 때문에 동판인쇄를 이용한 전사기업의 장식기술을 개발하였고, 영국은 이러한 대량생산기술을 토대로 자기의 산업화와 대중화를 이끌어냈다.
왕실에서 인정한
로열 우스터
영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도자기 회사인 우스터는 영국 도자산업의 혁신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본차이나와 전사轉寫 기술을 바탕으로 고급자기를 개발하였다. 1789년 왕 조지 3세George III(1738 ~ 1820)로부터 영국 도자기 회사로는 최초로 로열의 칭호를 부여받아 '로열 우스터'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로열 우스터를 비롯한 로열 크라운 더비Royal Crown Derby, 웨지우드Wedgwood 증은 유럽 대륙 국가들에 비해 자기제작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혁신적인 제작기술을 끊임없이 개발되었다. 결국 로열 우스터는 자기제작의 산업화와 고급화 전략으로 궁정과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자기를 대중에게 확신시키고 영국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었다.
로열 우스터 '과일그림 금도금 커피포트 & 커피세트'
황실에서 사용한 작품으로 로열 우스터의 유능한 장식가들이 순금과 자기를 결합한 기물에 사실적으로 과일모양을 묘사하였다. 장인의 서명이 남아 있어 더욱 가치있는 작품이다.
19C | 영국
덜튼 '렘베트 화병'
덜튼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영국의 국력과 기술력을 보여주기 위하여 당시 만국박람회에 출품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19C | 영국
오빙턴 브라더스 '디너 서비스'
19C | 영국
우스터 '물안개 피는 호수' 화병
화병 안의 그림은 한정판으로 사진의뢰를 받아 로열 우스터에서 만든 작품이다. 호수의 경치를 파스텔톤으로 아름답게 표현했으며 양손잡이에 인물부조가 장식되어 있다.
19C | 영국
로열 우스터 '꽃그림 화병'
로열 우스터의 대표적인 화병으로 고유의 꽃장식과 황금색이 영국 왕실의 전통과 기품을 표현하였다.
19C | 영국
로열 우스터 '공작새가 그려진' 화병
뚜껑이 있고 줄기 형태의 양손잡이가 있는 화병으로 짙은 청색과 엷은 연두색의 바탕에 두 마리의 공작새가 그려져 있다.
19C | 영국
웨지우드 장식화병
19C | 영국
그린 오크 장식장
20C | 이탈리아
웨지우드 커피세트
19C | 영국
로열 덜튼 '기타치는 여인 화병'
20C | 영국
K. P. M '마리아와 아기 예수'
19C | 독일
마이센
1710년 독일 마이센에서 유럽 최초로 백색 자기가 개발되었습니다.
마이센을 'First in Europe'이라고 칭하는 것은 유럽에서 최초로 제작된 자기라는 의미와 작품성과 소장가치 면에서 최고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세브르
국왕 루이 15세의 지원 아래 1757년 왕립 자기소로 거듭난 세브르는 금 도금 장식과 유럽풍의 꽃문양이 섬세하게 그려진 특유의 화려함은 로코코 양식의 정수입니다.
로열 우스터
1789년 조지 3세로부터 영국 도자기 회사로서는 최초로 로열 'Royal'의 칭호를 허가받은 로열 우스터는 화려한 색채와 금장 장식이 아름다워 현재까지 영국 왕실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도자기 화판
18세기 중반 독일 베를린에서는 종이와 같이 얇고 평평한 도자기 화판을 제작하였다. 유럽의 유명한 도자기 장식 화공들은 부드럽고 완벽한 도자기 화판에 그림을 그려 벽이나 공예품, 가구, 시계 케이스 등에 장식하여 갤러리에 전시하기도 하였다. 19세기 중반에는 남편 부르크와 마이센, 후첸로이터에서도 훌륭한 화판들이 많은 예술가들에게서 작품이 탄생하였다. 특히, 베를린 K. P. M. 도자기 화판은 20세기초까지 만들어졌는데, 렘브란트나 라파엘로의 명화에서부터 관능적인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까지 뛰어나게 묘사하여 지금까지 수준 높은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사진처럼 선명하고 정교한 수준 높은 도자기 화판은 캔버스에 그려진 명화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순결한 성녀
19C | 독일
르네상스 시대 아름다움 ; 액세서리를 단 귀부인
1883 | 독일
닭과 공작새에 모이주는 여인
19C | 독일
후첸로이텨
20C 초 | 독일
아름다운 로라
19C | 베를린
포도광주리 앞에서 동전 세는 남매
19C | 베를린
거울보는 아라비안 여인
19C | 독일
베를린 '멜론과 포도를 먹는 소년들'
19C | 독일
마돈나와 성요한
19C |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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